목표에 집착하지 마라, 그래야 지금/여기에 존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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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5월 26일

영국의 종교 사상가 카렌 암스트롱은 자신의 자서전에서 달성해야 할 뚜렷한 목표 없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 책이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신앙심이 깊어 열일곱의 나이로 수녀가 되었지만 수녀원의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7년 후 환속하게 된다.

그 이후 그녀의 삶은 방황과 좌절의 연속이다. 환속 후 옥스포드에서 교수가 되기 위해 영문학을 공부했지만 박사학위를 문턱에서 놓친다. 그 이후에도 과거 수녀였다는 이력을 활용하여 종교관련 방송 등에 출연하며 종교 전문가로 활동했으나 그것도 한 시절 반짝했을 뿐 지속되지 못했다.

이래 저래 삶이 피곤하던 시절, 카렌은 인생의 무풍지대 머물고 있었다. 무풍지대라서 그런 것일까, 특별히 할 일이 없게 된 카렌은 평소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던 종교들의 역사에 대해서 책을 쓰면 좋을 것 같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러나 그 시절, 그러니까 1989년, 영국에서는 종교관련 서적이 전혀 눈길을 끌지 못했다. 하지만 카렌에게 '신의 역사'를 쓰는 것은 세속적인 성공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자기 자신에게 용기를 불어 넣을 새로운 일이 필요했을 따름이었다.

 

Senior woman reading book at home by fireplace

 

그래서 그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고 출판이 될지 안 될지도 모르지만 자신이 평소 가지고 있던 신앙에 대한 문제를 탐구하기 위해 종교의 역사에 대한 연구에 푹 빠졌다. 책을 써서 뭔가를 성취하겠다는 뚜렷한 목표 없이 그저 순수한 호기심에서 관련 책들을 읽었다. 그런데 그 때, 책이 말을 걸어 오고, 독서의 와중에 몇 번씩 황홀경 속에 빠져 들어 가는 경험을 했다.

“대화 때문에 자꾸 끊기는 일이 없어지니까 책에 적힌 단어들이 내면의 자아로 직접 말을 걸기 시작했다. 그 단어들은 단순히 머리로만 흥미로운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갈망과 당혹에 곧바로 말을 걸 었다. 나는 이제 옛날처럼 책에서 개념과 사실을 긁어 모아다가 다음 인터뷰를 위한 먹이로 삼는 것이 아니라 그 안 깊숙한 곳에 고요히 머물러 있는 표현하기 어려운 깊은 의미에 귀 기울이는 요령을 배웠다. 침묵은 나의 스승이 되었다."

언젠가 나에게도 누군가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책을 많이 읽냐? 책에서 돈이 나오냐 밥이 나오냐?’라고 농담 삼아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나는 20여 년 전부터 책을 많이 읽기 시작했다. 그 때 는 왕복 2시간 이상 걸리는 출퇴근 전철에서 졸린 눈 비벼가며, 붐비는 사람들 틈에서 꿋꿋하게 독서를 했다. 그 때 읽었던 모든 책들은 직업에 도움이 되는 것들이었다.

컨설팅에 조금이라도 써 먹을 수 있는 지식을 채집하기 위해서 경영전략과 관련된 외국서적들이 출간되면 원서부터 사서 밑줄을 쳐가며 읽곤 했다. 프로젝트에서 맡겨진 임무를 잘 수행하고 고객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경쟁이 치열한 컨설팅 세계에서 살아남아야겠다는 생존욕구가 강력한 동기부여가 된 것이다. 지금은 그 때 독서를 통해 얻었던 지식들 대부분은 낡고 쓸모 없게 되었다. 하지만 덕분에 내 삶을 바꾸어준 '독서 습관'을 얻게 되었다.

그렇게 독서습관을 들인지 한 10여 년이 지나자 '경영전략'이라는 좁은 영역에서 시작된 나의 독서는 그 영역을 점차 넓혀갔다. 한 쪽으로는 전략에서 시작되어 동서양 전쟁역사, 중국의 병법서, 그리고 다른 한 쪽은 논리적 사고에서 시작되어 논리학, 심리학 등으로 그야말로 물결이 퍼지듯 일파만파 영역이 확대되어 갔다. 교수도 아니고 작가도 아니면서 안방을 아예 서재로 만들어 놓 고 다양한 책들로 서가를 꾸며 놓았더니 집에 놀러 온 지인이 그렇게 물어 본 것이다. 사실 나는 그 질문에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은근히 나를 비웃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서였다.

그런데 나중에 기분이 좋지 않았던 진짜 이유를 알았다. 그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때는 아마 '그냥 책을 읽는 것이 재미있고, 행복해서'라고 얼버무렸던 것 같다. 그러나 그 대답은 거짓이었다. 오랜 동안 나의 독서는 ‘지식의 채집과 소유’라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다. 책을 읽고, 밑줄을 치고 포스트 잇을 붙여서 좋은 지식, 정보, 문장을 채집해서 이것을 컨설팅, 강의, 창작 등에 써먹어야겠다는 목표 말이다. 그래서 감동과 재미가 있어도 밑줄 칠 지식이나 정보가 없는 문학, 자서전 따위는 절대 읽지 않았다.

Woman reading a book and covering her face


그 당시 나의 독서는 다분히 ‘소유지향적’ 목표들을 가지고 있었다. 다시 말해 미래에 명성이나 지위, 돈처럼 유/무형의 소유할 수 있는 것들을 위해서 독서를 한 것이다. ‘소유’란 특정 대상에 대해 배타적 통제가 가능한 상태를 의미한다. 같은 맥락에서 ‘소유지향적 목표‘란 특정 행위를 통해 소유상태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미래의 어느 시점에 무엇을 가진다거나 어떤 직위에 오르겠다거나 하는 것들이 다 소유지향적 목표이다. 책을 읽고 거기서 나온 지식이 나 정보를 강의나 창작에 활용하기 위해 채집해 두는 것도 소유지향적 목표를 위한 소유지향적 행위인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내가 그 때 엉겁결에 한 대답이 정답임을 강렬하게 느끼고 있다. 카렌 암스트롱 의 말처럼 그냥 행복하고 즐거운 독서가 진짜 독서이다. 이 책을 다 읽고, 이것을 강의에 써 먹어야지, 혹은 창작을 할 때 써 먹어야지 등의 생각을 가질 때 독서는 편하지 않았고, 흥미롭지도 않았다. 반면, 참독서란 그 자체가 행복한 경험이 되는 자발적이면서 자기목적적인 독서이다. 이렇게 자발적으로 하는 어떤 행위 자체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을 때 우리는 '지금/여기'에 오롯이 몰 입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신화학자로 유명한 조지프 캠벨도 비슷한 얘기 를 한 적이 있다.

“나이 지긋한 사람들은 자기 삶의 경험과 깨달음을 갖고 놀거나, 자신들이 떠올리기 좋아하는 생각들을 갖고 놀게 마련이다. 내 경우에는 읽을 때는 재미있지만 어떤 결론을 내려 주지는 않는 책이 장난감 노릇을 한다.”

‘읽는 순간 재미는 있으나 아무런 결론도 없는 책’은 젊은 날 내가 가장 기피하던 책들이다. 그러나 삶은 바로 그 매 순간에 있기 때문에 이제는 그런 책을 읽는 것이 진정한 독서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내가 지금/여기서 하는 행위가 미래의 소유지향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것이 아닐 때, 나는 지금/여기에 몰입할 수 있다'는 다소 모순적인 결론이다. 그러나 가만히 곱씹어보면 충분히 타당성이 있다. 우리가 독서라는 같은 행위를 하더라도 그것 자 체를 즐기지 못하고 그것을 통해 미래에 달성할- 소유할- 목표에 집착한다면 독서라는 행위자체에 몰입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미래의 소유지향적 목표가 없거나, 적어도 집착하지 않는 사람들만 이 현재에 몰입하는 삶을 살 수 있다. 다시 말해, 지금/여기에 몰입하기 위해서는 ‘미래의 모든 소유지향적 목표를 포기하거나, 그럴 수 없는 경우라면 너무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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