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전반전 – 산을 오르는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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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6월 09일

그러나 여전히 마음은 불편하다. 오늘, 즉 '지금/여기'에 집중하기 위해, 비록이 그것이 소유지향적이라 할지라도 내일의 목표를 포기하거나, 적어도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은 최근 유행하는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족들처럼 오늘만 흥청망청 즐기고 내일은 굶어도 좋다는 말로 들린다.

당장 고등학생인 딸 애는 눈 앞에 닥친 시험준비 때문에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낮에는 학원에서 공부하고 그 후에는 새벽까지 독서실에서 공부한다. 그럼 우리 딸은 지금/여기에 몰입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일주일 뒤에 있을 시험을 잘 보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니 말이다. 이번 시험에서는 내신 등급을 올려야 수시모집에 유리하다고 눈에 핏대를 세우면서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나의 논리대로라면 저 순진한 애는 잘못된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고 딸에게 ‘시험을 쳐서 내신등급을 올리겠다는 목표에 집착하지 말고 그저 공부 자체를 즐기면서 해라’라고 말하면 어떨까? 퀭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속으로 한 숨만 쉴 것이다. '아빠는 정말 세상 돌아가는 걸 모르나 봐' 이렇게 생각하면서 말이다. 하긴 어떻게 그렇게나 다양한 종류와 많은 양의 공부가 즐겁겠는가. 자신이 좋아서 스스로 선택한 과목도 아닌데……

소유지향적이건 뭐건, 미래에 뚜렷한 목표가 있고, 현재에는 적당한 경쟁이 있기에 그나마 동기부여가 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미래의 목표를 달성하면 거기에 따른 보상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어려운 상황을 견디면서 앞으로 나가는 것이다. 인간은 그런 식으로 동기를 부여 받으면서 고통과 장애물을 헤치고 전진하게끔 설계되어 있는데, 동기부여의 핵심 동인인 미래의 목표를 포기하라고 할 수 있을까?

 

Student studying in the library against room with large window showing city

 

그러나 나의 이론대로라면 그런 목표는 버리거나 적어도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시험을 잘 봐서 내신등급을 올리겠다는 목표에서 자유롭다면 딸 애가 굳이 인생의 봄날인 10대 후반에 독서실에 틀어 박혀 새벽까지 공부를 해야 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 나이에 ‘지금/여기’에 몰입하려면 친구들과 놀러 다니는 것이 최고다. 놀러 다니면서 즐기면 당연히 지금/여기에 몰입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모순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이 모순을 설명할 수 있는 논리는 삶을 전반전과 후반전, 즉 산을 올라가는 시기와 바다를 건너는 시기로 나누어 설명하는 것 밖에 없는 것 같다. 인생의 전반전, 즉 산의 정상을 목표로 하고 한 땀 한 땀 올라가는 그런 일방경쟁의 시기에는 미래의 목표가 인간의 삶에 의미가 있다. 일방 경쟁이란 앞에서 설명했듯이, 100m달리기처럼 하나의 결승점을 놓고 타인과 경쟁하는 것이다.

타인이 비교의 상대가 될 수는 있지만 스스로 얼마나 기록을 단축하느냐가 경쟁의 관건인 그런 경쟁이다. 산의 정상이라는 결승점은 고정되어 불변하기 때문에 목표는 명확하다. 그리고 그 정상에 도착한다는 목표, 다시 말해 정상을 정복한다는 소유지향적 목표도 의미가 있다. 그러한 목표는 ‘지금/여기‘서 일어나는 등반이라는 행위에 동기를 부여해 준다.

대부분 학교와 기업과 같은 조직에서 보내는 인생 전반기에는 삶의 가치나 목적으로 대변되는 ‘방향’보다는 좋은 학교 입학과 졸업, 좋은 기업 취직과 같은 명확한 목표를 쫓게 되어 있다. 물론 어린 시절부터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사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은 20-30대 인생 전반전에는 '닥치고 돌진'과 같이 눈 앞에 보이는 명확하고 달성 가능한 목표를 향해 매진하게 된 다. 저 고지(목표)를 점령하고 나면 보상이 따른다는 것을 선배들의 삶을 통해 이미 알고 있고, 또 선배들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떻게 살았는지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방법을 모방하면 된다. 인과관계가 비교적 명확하니 동기도 쉽게 생긴다.

그래서 인생 전반전은 '미래를 위해 사는 시기'라 할 수 있다. 창창한 미래가 남아 있고, 오늘의 선택이 미래에 많은 영향을 미치니 그럴 만도 하다. 흩어지는 꽃잎에도 깔깔댈 나이에 반쯤 감 긴 눈으로 책과 씨름하고 있는 딸 애를 보면 안쓰럽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 시절에는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영원히 시간의 노예로 살지는 않을 것이다’ 라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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