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의 퇴사 문화로 부검 메일이라는게 있습니다.
회사를 떠나는 직원이 퇴사 당일 동료들에게 아래의 내용을 담아 보내는 메일인데요.
이런 무시 무시한(?) 부검 메일은 아니고~ 최근 우리 퍼포마스 곁을 떠난 슈퍼 인턴 캐롤(라인) 님의 인턴 일지를 살포시 옮겼습니다. 인턴으로서 6개월 간 회사를 다니며 개인 블로그에 기록한 글들입니다.😊
회사 블로그에 공유하는 목적은:
첫째, 우리 회사에 입사하려는 인재들이 참고할 수 있는 글을 모으자,
둘째, 디지털 마케터, 비즈니스 컨설턴트를 꿈꾸는 주니어 분들이 봤을 때 현실감 있는 글이라서 입니다. (라고 적고 블로그 글감 충원이라고 읽자)
캐롤 님의 인턴 기록은 2~3주에 1번씩 연재될 예정입니다. 개인 블로그에 적은 개인 기록이기 때문에 경어체가 아닌 평어체를 사용했습니다.😍
(20.12.26. 인턴 3일 차)
이번 해에 난 진취센터의 현직자 멘토링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관심있는 분야의 멘토님과 ‘나’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에 포커스를 두고 멘토링을 5회차까지 진행했었다.
고맙게도 나를 좋게 봐주셔서 마지막에는 정말 갑작스럽게 자신의 회사의 인턴 자리를 제안해주셨고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멘토링을 하면서 훕라에서 한 라이포그래피 활동, 책, 블로그, 강연 등등 수많은 얘기들을 꺼냈었다. 무엇보다도 훕라에서 깨우쳤던 부분들, 가치들을 진심을 담아 얘기했던 것 같다.
확실히 그 전에 비해 자소’설’의 비중이 확 줄었다.
그래도 한 켠에는 이런게 학연인가 하는 찜찜함이 있다. 아무리 스카웃이라 하지만 공식 절차?를 밟고 들어오신 분들에 비해 나는 뭔가 날로 먹은 느낌. 일말의 죄책감이 느껴진다.
아무튼,
내가 회사에 다닌다니.
뭔가 어색하기도 하고 긴장되기도 한 마음으로 첫 출근을 했다.
나의 직책은 ‘Business analyst’. 할 줄 아는게 아무것도 없는데 무지막지한 부담을 떠안았다.
회사에선 영어이름을 쓰는데, 한참을 고민하다가 초등학교 영어학원 다닐 적 이름이었던 Caroline으로 결정했다. 캐롤라인, 캐롤린. 뭔가 세련된 맛이 없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암튼 회사 사람들이 다 날 영어이름으로 부른다. Caroline 씨 점심 먹으러 가시죠. 아직까지 영 적응이 안된다. 그렇다고 싫은 건 아니다. 오히려 너무 좋다. 근데 이 분위기 너무 새롭다.
고작 3일 출근했지만 내가 느꼈던 점, 배웠던 점들을 기록으로 남겨보려고 한다. 6개월 동안 인턴을 하는데, 시간이 좀 흐른 뒤에는 어떻게 변화할지 기대가 된다.
1) 우선 회사 분위기가 굉장히 수평적이다. 영어 이름을 쓴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첫날 갔을 때 아버지 뻘 되시는 분이 정중히 고개 숙여 인사하셨다. 좀 충격적이었다. 어엿한 성인으로서 내가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회사생활은 적어도 <미생>은 아니다.
2) 운이 좋게도 난 인턴치고는 상당히 비중?이 있는 일들을 맡게 되었다. 현재 IR리포트 (Investment Report, 고객사의 투자 유치를 도와주는 것) 프로젝트 팀에 투입되어 업무를 하고 있다. 아직은 회의록을 쓰는 단계지만 거의 매 회의마다 참여할 수 있고 그만큼 배우는 것도 많다. 얘기를 들어보니 인턴에게 IR리포트 업무를 맡기는 회사는 거의 없다고 한다. 난 이번 해에 운이 몰빵된 것 같다.
3) 업무의 8할은 자료조사다. 회의가 없는 날은 거의 그렇다. 자료조사하고 고스트덱 (ppt 발표자료) 만들고를 반복한다. 통계학 그 거지 같은 중간,기말 대체 리포트 덕에 통계를 보는 눈이 좀 늘어 자료 조사하는데 도움이 된다. 하루에 8시간 근무하는데 거의 3-4시간은 자료조사 하는 것 같다.
4) 3일만에 PPT 실력이 엄청 늘었다. 매일 하다 보면 저절로 늘게 되는 것 같다. PPT, 엑셀 못한다고 겁먹을 필요 없을 것 같다.
5) 생각보다 회사는 우리에게 많은 걸 바라지 않는다. 첫날에는 자료정리해서 ppt 고작 3슬라이드 만들었는데 칭찬을 받았다. 엊그제는 회의록을 썼는데, 수고했다며 좀 쉬어 가면서 하라고 하신다. 회사사람들이 다들 너무 nice하셔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내가 느낀 바로는 그렇다. 다만, 첫날 내가 끄적거린 ppt를 다음날 고객사 미팅 때 활용하는 줄은 몰랐다. 작은 업무라도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해야겠다.
6) 성비가 상당히 충격적이다. 우리 회사에서 여자는 나 뿐이다. 물론, 회사의 규모도 작고 사람들도 몇 없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주변의 다른 회사들을 봐도 그렇다. 적어도 판교 기업성장센터에 있는 회사의 성비 비중은 8:2인 것 같다. 많아봐야 7:3. 스타트업 회사들은 원래 다 이런가. 왠지 분위기가 암울하다.
7) 나 혼자 여자라서 좀 외롭지만 덕분에 한 건 했다. (사실 너무 바빠서 외로울 틈도 없다) 우린 지금 패션 & 코스메틱 브랜드의 IR 리포트를 작성하고 있는데 화장품에 대해 그나마 아는 사람은 나 뿐이라 회의 중에 살짝궁 의견도 내고 했다. 뿌듯하다.
8) 디지털 마케팅 회사이긴 하지만 컨설팅 분야의 일도 많이 한다.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도 그렇다고 볼 수 있다. 그 쪽 분야의 관심을 갖고 있었던 터라 일이 재밌다. 다양한 분야의 산업들을 경험하고 그것에 대해 솔루션을 제공해 나가는 과정이 정말 재밌다.
9) 하지만 재미는 인턴의 특권? 재미를 느끼는 이유가 고객사와 회의할 때 제 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나도 회사 사람들과 같은 팀에 속해 있지만 시니어 분들과 달리 누군가를 설득하거나 의견을 낼 필요가 없어서 좀 더 객관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된다. 내가 회의의 주요 당사자가 아니니까 스트레스는 없다.
10) 사람을 상대하는 게 참 힘들다. 운이 좋아서 좋은 팀원들을 만났다고 하더라도 이 업계에서 일을 하게 되면 참 별의별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고 한다. 화욜날은 유명한 디자이너 분과 미팅을 했는데, 팀원들 얼굴이 죽상이었다. 아직도 대표님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인트로만 1시간 넘게 했다.
11) 이 업무는 감정보다는 이성을 잘 발휘해야 하는 것 같다. 잠재고객을 타겟팅하고 그들의 니즈를 파악하는 게 정말 통계학적이다. 그냥 누가 더 많은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는지, 숫자 싸움인 것 같다. 같이 일하고 있는 사람들도 거의 다 이성적이다. 나도 이성적인 사람에 가까운 지라 좀 다행이다. 하지만 덕분에 회사 분위기는 삭막하다.😂
12) 영어가 매우 매우 매우 중요하다. 국제통상학을 이중 전공으로 하면서 나름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는데 회의를 해보고 와장창 깨졌다. 싱가폴 분들이랑 회의했는데 동남아 특유의 억양? 때문에 거의 반 이상은 못 알아들은 것 같다. 학교에서 원어민 교수님이 또박또박 발음해주는 것이랑은 차원이 다르다. 내가 지금 프랑스어 공부할 땐가. 잠깐 생각이 들기도 했다.
13) 7시 퇴근. 몸이 고단하다. 나도 가정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퇴근하면 나를 반겨줄 남편과 아이들이 있으면 좋겠다. 근데 결혼.. 할 수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