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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자일 전략 - 산을 오를 것인가, 바다를 항해할 것인가

Written by 이건호 | 19년 6월 04일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로 시작하는 유명한 시조가 있다. 중종과 선조 때 벼슬을 지낸 서예가 양사언의 시조이다. 인간의 게으름을 등산에 빗대어 타이르는 내용이다. 이 시조는 다들 알다시피 다음과 같이 끝이 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 만은, 사람이 제 아닌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읽을 때 마다, 그 운율이 리드미컬한 것은 물론이고,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단순하면서 명징하여 수백 년을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올 만한 강한 생명력을 갖춘 명시임을 깨닫게 한다.

 

그런데 이 시에서 우리가 간과한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 만은' 이라는 구절 속에 내포된 또 다른 의미이다. 보통은 사람이 열심히 오르면 어떤 산도 오를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해서 산을 정복하는 모든 의무를 사람에게 지운다. 그러나 지진이 상시적으로 일어나서 끊임 없이 산봉우리가 생겼다 없어지고, 길이 생겼다 없어진다면 보통사람은 차치하고, 엄홍길 대장 같은 등반의 고수들이라도 산을 정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양시언의 말대로 ‘오르고 또 오르면’ 반드시 정복 가능한 이유는 산의 목표지점 -대게는 최고봉- 과 거기에 이르는 길이 유동적이지 않고, 고정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최고봉에 이르는 길은 여러 가지이고 시시각각 날씨가 변해서 등반의 상황이 달라지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지형지물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지형지물이 바뀌면 목표 자체가 사라지게 되거나 목표로서의 의미를 상실하게 될 수도 있기에 날씨의 변화와는 차원이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낸다.

과거 불확실성이 낮은 경영환경 속에서 사업을 할 때는 마치 산을 올라가는 등반과 조건이 흡사했다. 날씨가 변덕스럽기는 해도 일기예보를 참조해서 어느 정도 대비를 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 산 꼭대기가 어디로 도망가거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간이 걸려도 묵묵히 부지런히 올라가면 ‘못 오를 리’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런 시기에 성공을 위해서는 사업에 대한 정확한 지도(전략/계획)와 튼튼한 근육(자원), 그리고 성실성과 속도 등이 중요한 덕목이었다.

그러나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특히 경영 환경은 다른 세상에 비해 더욱 바뀌었고 지금도 바뀌고 있다. 산을 올라가는 등반이 아니라 바다를 건너가는 항해의 형국으로 바뀌고 있다. 바다를 건너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특정 항구나 섬을 목표를 정해 놓고 출발해서 거기로 도착하려는 매커니즘은 등반과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바다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길이 나 있는 것도 아니고, 이정표가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지금은 첨단 기술의 발달로 바다 위에서도 해로라는 길을 만들고, 해도라는 지도를 가지고 한치의 착오도 없이 항해를 하지만 여기서 등반과 항해는 불확실성이 높고 낮은 상황에 대한 비유이니 그에 맞게 이해하기 바란다.)

저기 멀리 보이는 큰 파도의 물마루를 목표로 하고 부지런히 노를 저어 가다 보면 어느새 그 파도는 사라지고 없다. 그러다 보면 열심히 노를 저었지만 지금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조차 알 수 없는 혼돈의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유동적인 이런 상황에서는 고정된 목표를 추구하는 것이 의미 없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업에 대한 지도 보다는 올바른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 그리고 미세한 변화도 감지할 수 있는 감수성과 변화에 따라 행동을 수정할 수 있는 민첩함 등이 성공을 위한 중요한 덕목이 될 것이다.

불확실성이 낮은 환경과 높은 환경, 즉 산을 오르는 등반과 바다를 건너는 항해, 각각에서 승패를 결정짓는 결정적인 요소는 무엇일까? 각각의 상황에서 성공을 위해 필요한 다양한 요소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을 뽑으라면 등반에서는 속도(speed)이고, 항해에서는 민첩성(agility)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속도(speed)를 언급할 때면, 빼놓을 수 없는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우사인 볼트‘ 이다. 자메이카 출신의 단거리 육상 선수인 우사인 볼트는 은퇴하기 전까지 그야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보적인 존재였다. (육상에서는 물론이고 사생활의 스캔들 측면도) 아무런 장애물이 없는 탁 트인 100m 경주 레인에서는 인간이라면 그 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는 존재는, 적어도 한동안 없었다. 이 무시무시한 속도는 바로 목표에 대한 명확한 인지와 그의 강인한 근육에서 폭발하는 것이다.

그러나 민첩함(agility)의 세계에서는 얘기가 좀 달라진다. 리오넬 메시는 축구선수 중에서 빠른 편이기는 하지만 가장 빠르지는 않다. 그리고 키나 체구로 봤을 때도 역시 대단히 강인한 신체조건을 갖춘 선수는 아니다. 그런데 그는 어째서 현존하는 축구선수 중에서 가장 위대한 선수로 추앙 받을까? (호날도를 좋아하는 팬에게는 물론 아니겠지만)

축구에서는 혼자서 100m 씩 공을 몰고 달리는 경우는 흔치 않다. 누군가 공을 잡으면 상대편 선수들이 앞 뒤에서 달려 들어 방해도 하고, 그것도 안되면 파울도 해서 어떻게든 공을 뺏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런 세계에서 메시가 유명한 것은 달려드는 상대편 선수들을 요리조리 피해서 직접 골을 넣기도 하지만, 동료선수가 골을 넣을 수 있는 결정적인 패스를 잘 하기 때문이다. 속도도 제일 빠르지 않고, 신체조건도 제일 강하지 않지만 메시가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민첩성때문이다. 메시는 사방에서 변화를 감지하고, 거의 동물적으로 판단하여, 시시각각 가장 최선의 길을 찾아 유연하게 상대 선수들을 따돌릴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민첩성이다. 이런 민첩성은 변화에 대한 높은 감수성과 근육의 유연함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