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내맡겨야 하는가?
과거에 대한 후회와 죄책감만이 현재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 그리고 기대와 욕망도 현재를 위협하는 존재이다. 우리는 늘 사는 것이 불안하고 두렵다. 불확실한 삶, 한 치 앞에 뭐가 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주변에 의지할 것조차 전혀 없는 이들은 두려움에 오들오들 떨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원하는 미래에 대한 커다란 기대와 미래를 원하는 대로 통제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인해 ‘지금/여기’에서 늘 조급해하고 안달하기도 한다.
우리네 삶을 난기류에 흔들리는 비행기에 비유해보자. 비행기를 타고 가는데 난기류를 만나, 기체가 심하게 흔들린다. 그대는 어떻게 대응하는가? 어떤 사람들은 공포에 사로잡혀 좌석을 꽉 움켜쥐고 잔뜩 긴장한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비행기를 제대로 운전해 달라고 애꿎은 승무원에게 화도 내고, 애원도 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는 비행기는 물론이고 요동치는 자신의 마음도 안정시킬 수 없다. 하지만 비행기를 자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은 다른 방법을 택한다.
쓸데없이 힘 빼지 않고, 오히려 좌석 깊숙이 몸을 누이고 이 흔들림을 즐긴다. 마치 놀이공원의 기구를 타듯이 말이다. 그런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서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영역과 다른 존재에게 내맡겨야 할 영역을 확실히 구별할 줄 아는 능력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펼쳐지는 미래(Unfolding)'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것이다.
인간의 능력으로 알 수 없는 자연의 현상들이 자신을 관통해 지나가도록 놔두는 것이다. 그렇게 미래에 대한 모든 것을 자연의 섭리에 내맡겨야 할 때가 있다. 그러지 않고 미래를 스스로 ‘통제‘하려 들면 오히려 무수한 부정적 감정이 생겨난다. 그런데 이런 말을 들으면 의구심이 생긴다. ‘도대체 무엇을 어디에 내맡긴단 말인가, 이렇게 위험한 세상에서 내 미래의 삶을 통째로 방치하란 말인가?’
그러다보니 ‘미래를 내맡긴다’는 말이 참 무책임하고 나약하다는 인상을 준다. 마치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고 다른 존재에게 일임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무책임하거나 나약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매우 용기 있는 결단이다.
'내맡긴다'는 것은, 현시점에서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한 것이다. 이 점이 중요하다. 세상에는 ‘과정과 결과’가 있다. 과정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다했다면 결과는 안달하지 말고 그냥 내맡기라는 것이다. 안달해봐야 달라질 것이 없으니 내맡기는 것이 보다 전략적이다. 그리고 원하지 않는 결과가 나오면 받아들이고, 그 다음 과정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또 열심히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진인사대천명 盡人事待天命'이다. 단순하지만 매우 깊이 있는 깨달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