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욕망은 우리에게 '배수의 진'을 강요한다. 그리고 이 배수진 이라는 것은 현재의 삶을 가장 피폐하게 만든다. ‘무엇인가를 반드시 해내고야 말겠다’, ‘뜻을 세웠으니 죽기 살 기로 성취하겠다‘ 등등 지금도 우리가 옳다고 믿고 따르는 신념체계들이다. 이런 신념체계로 인해 우리는 일상의 전사가 되어 불퇴전의 각오로 항상 투쟁하고 있다. 그야말로 '전쟁 같은 삶'을 산다. 그리고 그 전쟁에서 상처투성이의 전사가 되어 승리를 거머쥐는 이미지는 너무나 매력적이다.
수많은 영화는 그런 투사들을 우리의 머리 속에 영웅으로 각인시킨다.
그러나 현실과 일상은 ‘전쟁’이 아니다. 그러니 전쟁에서의 규칙이나 전략이 통하지 않는다. 전쟁이 아닌 삶을 전쟁처럼 살려고 하는 것도 문제다. 진짜 전쟁을 경험하지도 못한 사람들이 매사를 적과 아군으로 구분하고 적을 파괴하고 승리를 쟁취하고자 한다. 아니 어쩌면 진짜 전쟁의 참상이 무엇인지 모르니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다들 ‘젊어서 이렇게 투쟁적으로 살면서 성취를 하면 나중에 편안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오늘도 열심히 배수진을 치고 죽기 살기로 투쟁하는 삶을 산다. 그러나 ‘배수진’의 전략은 극적이긴 해도 그리 성공 가능성이 높은 전략은 아니다. 그 유명한 이순신 장군의 ‘명량 해전’도 그렇기에 성공 가능성이 높은 전략이었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는 확률적 가능성을 초월하는 초인적 전략이 필요 하기도 하다. 그것이 배수진이다.
그렇기에 배수진은 아무데서나 활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경우에만 활용 이 가능한 것이다. 살아가 데서도 이는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이를 악물고 뭔가를 추진해야 성취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대학입시이건, 승진이건 목표가 정해지면 배수의 진을 친다는 마음으로, 즉 죽을 각오를 하고 매달려야 한다고 프로그램화되어 있다. 하지만 이런 질문을 던져 보자.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성공 가능성이 높지 않은 배수진이 우리네 일상적인 삶에서 얼마나 효력을 발휘할까?
지난 2016년과 2017년에 일본과 한국에서는 두 젊은이가 자살을 했다. 일본은 여성이고 한국은 남성이다. 자살 그 자체는 불행한 일이라도 요즘 그리 드문 사건은 아니다. 그런데 유독 이 두 젊은이의 자살이 나의 시선을 끌었다. 사는 나라도 다르고 서로 전혀 모르는 이들의 자살에는 유사 한 점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기 나라의 최고 대학을 졸업했다. 그래서 그런 것이겠지만 각 나라에서 굴지의 대기업에 취직했다. 청년 취업이 한국은 물론이고 그 당시에는 일본도 어려 웠는데 그런 환경에서 명문대학을 나와 명문 대기업에 취직을 거뜬히 해냈으니 여기까지는 너무나 행복한 모습이다. 그런데 둘 다 과도한 업무를 이기지 못하고 신입이라는 딱지를 떼기도 전에 자살을 선택했다. 자살을 하게 된 배경이 너무나 닮았다. 둘 다 자살 직전에는 하루 20시간이 넘는 과로와 강압적인 회사 분위기에 시달렸다.
'자살' 그 자체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선택이다. 그래서 처음에 이들이 몸 담았던 기업들도 그저 흔한 자살 사건으로 마무리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자살에는 이유가 있고 그 이유는 단순히 개인의 선택만은 아니다. 모르는 사람들은 쉽게 얘기할 것이다. '회사를 때려 치고 나오면 되지, 왜 스스로 목숨을 끊어?' 그러나 최고의 대학을 졸업하고 어렵사리 입사한 최고의 직장에서 업무 가 어려워서 '그냥 때려 치고 나오기'가 자존심 강한 젊은이들에겐 쉽지 않다. 그것은 자기 자신 과 세상에다가 스스로가 패배자임을 선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테니 말이다.
그러나 그들의 자살을 단지 강한 자존심 탓만으로 돌릴 수는 없다. 진짜 원인은 '배수의 진'을 치고 이들의 등을 떠민 사회에 있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 3-4개월 내에 성과를 내야 하는 컨설 팅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그 3-4개월은 개인 생활은 물론이고 최소한의 휴식도 가지기 어려웠던 초년병 시절을 보냈다. 그 때는 화장실에서 개인 용변을 볼 때조차 ‘내가 이렇게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도 되나?’하는 불안이 들 정도였다. 별다른 생각 없이 그저 ‘견뎌야 한다. 그래야 이 집단에 소속될 수 있다.’는 몸부림만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을 견디는 사람들은 조직 내에서 인정받고 성장 한다. 그러나 견뎌 낸 사람들이 상사가 되면 그들도 타고 온 배를 모두 불살라 버리고 부하직원 들에게 무조건 전진만을 명령하게 된다. '나도 이 혹독한 과정을 겪고 여기에 이르렀으니 너희들 도 그래야 해, 그래서 살아남는 놈만 키워 줄 거야.' 이런 식으로 배수의 진은 끊임 없이 유전된다.
그러나 배수진 전략은 역사적으로 위대한 전략가인 이순신 장군은 물론이고 '배수진' 이란 말의 원조인 중국 한나라의 한신 장군도 운이 몹시 좋았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전략이다. 사정이 그러할 진데, 평범한 우리가 매사에 배수진의 자세로 사는 모습은 너무 힘들어 보이지 않는가? 그럼 에도 오늘날 우리사회에서는 '경쟁이 치열한 세상에서 죽기 살기로 하지 않으면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다'는 식의 결연한 모습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10대 초등학생부터 4-50대 대기업 임원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분투하는 모습이다. 우리는 이렇게 30년 이상을 배수의 진을 치고 투쟁을 해 야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인가?
우리가 배수의 진을 치고 죽기살기로 노력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와 문화가 ‘후퇴하면 죽음뿐이고 전진만이 승리를 가져온다’는 신념으로 우리를 프로그램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우리는 두려움 으로 인해 '전전긍긍 戰戰兢兢'하고 욕망으로 인해 '노심초사 勞心焦思'하면서 멧돼지처럼 앞만 보고 질주하게끔 길들여져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