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살펴 보았듯이 원시적 형태의 전략은 유전자에 짜 넣어진 프로그램들의 조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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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특정한 환경을 전제로 하여 유전자 속에 프로그램화된 전략은, 그러나 그러한 환경이 변화하면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다 수많은 세월이 흘러 다시 변화한 환경에 적응하는 새로운 원시적 전략이 나올 때 쯤이면 환경은 또 다시 변화하게 된다.
이러한 환경의 변화, 그 자체에 적응하기 위해 인간의 경우에는 유전자에 프로그램화되어 있는 원시적 전략에만 의존하지 않고 그때 그때마다 두뇌가 ‘의식적으로 전략을 창조’ 하는 수준으로 진화하였다. 인간에게는 다른 종들에 비해 ‘전략’이라는 것을 의식적으로 창조할 수 있는 토양이 잘 조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전략’을 의식적으로 창조할 수 있는 토양이란 다름 아닌 영장류로서 물려 받은 유산이다. 영장류는 종종 내부 집단을 조직하여 외부 집단과 구분한다. 인간과 같이, 육체적으로 다른 종에 비해 나약한 존재들은 포식자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것은 물론, 보다 큰 먹이를 사냥 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집단을 이루며 살아야 했으며 그럴 경우, 유전적으로 자신과 가장 가까운 집단에 속해 있는 것이 생존에 매우 유리했다.
그러나 집단을 이루고 살기 때문에 대부분의 다른 종들과는 달리 영장류 사회에는 구성원들 사이에 지배/피지배의 계급체계가 뚜렷하게 구축될 수 밖에 없다. 영장류에 속한 종은 이른 시기부터 서로를 의식하고 계급체계 내에서 지위 다툼을 벌이며 궁극적으로 지배와 복종이라는 특수관계를 형성해 왔다.
그렇지만 집단을 이루기 시작한 초기에는 한 개인이 타인을 확실하게 통제하는 것이 실제적으로 불가능했다.
어떤 무리의 우두머리가 너무 잔인하게 굴면 나머지 사람들은 그를 떠나서 다른 무리로 가면 그만이었다. 맹목적인 힘만으로는 결코 만족스럽게 지배할 수 없었다. 당시에는 통제할 대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먹이나 성관계를 제외하면 특별히 욕심부릴 것도 없었다. 다른 사람의 돌도끼나 토기를 차지하려 했다면 날마다 사냥하러 다닐 때 그것을 이고 다니느라 금세 지쳐버렸을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자기의 일을 대신 하게 하려고 위협을 했다면, 사람들이 곧 떠나버려서 혼자 남았을 것이다. 따라서 인류 진화에서 대부분의 시기 동안 지배와 복종을 통해 타인을 착취하는 일은 힘이 있는 우두머리에게도 그렇게 매력적인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극적으로 바뀐 것은 약 1만 5000년 전 농사가 생존의 주요 수단이 되면서 부터다. 농사를 짓게 되면서 사람들은 한 자리에 머물러야 했다. 수렵과 채집에 의존하는 사냥꾼들은 늘 이동해야 했지만 농사꾼은 한번 정착하면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정착한 땅에 많은 물적, 정신적 에너지를 투자하였고, 이를 통해 잉여 수확물을 생산하고 부를 축적하기 시작했다. 또 이렇게 축적한 부를 자식들에게 물려 주게 되자, 점차적으로 근육의 힘이 아닌 축적한 부에 의한 계급체계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사실상 인간 세계에서 ‘평등’이 종말을 고했다. 이런 불평등한 세계에서 인간들의 계급 간에 갈등이 시작되었고 또 본격적으로 더 높은 계급을 쟁취하기 위한 내부의 투쟁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집단 내부의 계급 투쟁으로 인해 인간들은 그 때 그 때 필요한 전략을 의식적으로 창조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도록 진화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더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집단과 집단 사이의 갈등과 투쟁이다. 이는 집단 내부에서 일어나는 계급투쟁보다 규모도 훨씬 크고 양상도 더 심각했다.
수렵/채집 생활을 하면서 특정 먹이 감을 놓고 다른 집단과의 다툼은 자주 있었다. 그러나 이는 대부분 충동적이고 일시적이며 소규모의 다툼이었다. 그러나 농업을 발명하여 정착생활을 하게 되면서는 집단 간의 갈등이 더욱 심화된다. 즉, 집단이 특정 장소에 존재하게 되고, 재산을 축적할 수 있게 되고, 또 노동력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면서 다른 집단들이 축적한 재산과 노동력을 빼앗으려는 의도에서 대규모의 조직화된 다툼, 소위 ‘전쟁’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대립하는 집단들이 상대방을 조직적으로 살상하면서 싸우는 진정한 의미의 전쟁은 인간을 비롯한 일부 영장류와 사회적 곤충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이다.
많은 개미류에서는 병정 개미라고 하는 특수한 일개미는 무시무시한 전투용 턱을 가지고 있어 다른 개미 군대와 싸우는 일을 도맡는다. 다른 개미의 본거지에 침입하여 집을 방위하고 있는 일개미나 병정 개미를 죽이고 성충이 되기 전의 애벌레를 빼앗아 간다. 애벌레들은 그 후 포획자의 본거지에서 성충이 되어 청소, 먹이 구하기, 새끼 돌보기 등 개미집을 유지하기 위한 일상적인 작업에 활용된다.
생존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집단을 이루는 것이 유리했던 생명체는 집단 내의 계급 투쟁과 집단 간의 전쟁에 빈번하게 노출되게 되고 이러한 투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전략’을 의식적으로 창조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게 되었다. 특히, 인간은 농업이라는 것이 발명되면서부터 그런 양상이 다른 동물들에 비해 더욱 심화되었다.
그러나 집단을 이루고 사는 개미나 일부 영장류의 싸움은 수 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 목적과 양상이 변하지 않았다. 오직 인간만이 수렵과 채집 단계, 농경 사회, 산업 사회를 거치면서 전쟁의 목적과 양상이 지속적으로 변해 왔으며 더불어 전략도 더욱 정교하게 진화하게 되었다.
그것은 인간만이 몇 단계에 걸쳐 전략을 진화 시켰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진화한 생명체 중에서도 인간이 가장 전략적인 존재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은 가장 전략적으로 진화한 존재이다.
이 글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전문가 이건호님이 기고한 연재물입니다. 디지털 비즈니스 생존에 필요한 여러 가지 전략 이야기를 주기적으로 들려줄 예정입니다. 글을 보고 의견 있으면 아래 댓글 혹은 hello@performars.com으로 보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