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주축이 된 그리스 연합이 강대국인 페르시아를 대상으로 대규모 전쟁을 치르면서 훗날 ‘strategy’라는 단어의 어원이 되는 ‘strategus’라는 단어가 생겨난다. 기록에 따르면 아테네에서 전쟁이 발생하면 전쟁위원회를 구성하여 전쟁을 수행하였는데 이 때, 전쟁위원회의 구성원을 ‘Strategus’라 불렀다고 한다. Strategus들은 전쟁을 기획하고 직접 수행하는 데 있어 리더의 역할을 맡았던 귀족들이었을 것이다. 가령 마라톤 전투의 칼리마코스와 밀테아데스, 테르몰필라이의 레오디나스, 살라미스 해전의 테미스토클레스와 같은 인물들이 바로 ‘Strategus’였을 것이다. 이렇게 특수한 상황에서 주어진 역할과 그 역할을 맡은 사람들을 지칭하는 데에서부터 전략, 정확히 말하면 서양의 Strategy개념은 시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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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당시 strategus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Strategus라는 단어는 다시 군대라는 의미의 stratos와 이끈다, 또는 지도한다라는 의미의 agein으로 구분이 된다고 하니 아마도 ‘군대를 이끈다’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군대를 이끈다’라는, 우리의 기대보다 형편없이 소박한 이 말은 어떤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었을까?
이 문장의 의미를 되씹기 위해서는 앞에서 언급한 페르시아 대전쟁의 주요 전투인 마라톤 전투나 테르몰필라이 전투 장면 등을 머리 속에 떠올릴 필요가 있다. 여러분은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간과 장소로 갔다고 생각해 보자. 이때 여러분은 그 당시(Time), 그 장소(Place)에만 있지 말고 그 치열한 전투 속의 존재하는 한 명의 장군(Occasion)인 것이다.
자 여러분들 앞에 어떤 광경이 펼쳐 지고 있는가?
고대 전쟁, 즉 원거리에서 적을 제압할 수 있는 소총과 같은 개인화기가 없던 시절의 전쟁은 동서양 예외 없이 육박적이었다. 그런 이유로 적이나 아군이나 전투를 하기 위해서는 서로 싸우기 편한 평지를 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마 페르시아 군이 마라톤 평원을 택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물론 테르몰필라이 전투에서는 스파르타군의 수적 열세 때문에 협곡을 택하였지만 협곡도 지형지물이 험한 산악이 아니라 육박전을 벌일 수 있는 좁으나 평평한 계곡이었다.
이제 저 2-300미터 앞에 당시로서는 아테네보다 훨씬 강대국이던 페르시아 군이 위용을 드러낸다. 늘름한 말을 타고 있는 기병들과 잘 닦여진 방패와 갑옷, 햇살을 받아 차라리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도록 빛나는 은빛 창과 칼을 차고 있는 전사들……
여러분과 병사들은 싸우기도 전에 주눅이 들어 버릴지도 모른다. 여기서 Strategus가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장군들은 이 순간에 아군의 대열을 흐트러트리지 않고 병사들의 피가 끓어 오르고 죽음을 불사하게 만드는 그 무엇인가를, 즉 기적 같은 리더십을 가지고 있었다.
마라톤 평원에서 자신들보다 수적으로 많은 페르시아 대군을 눈 앞에 두고 칼리마코스와 밀티아데스는 어떻게 그리스군에게 과감한 선제 공격을 하도록 용기를 불어 넣었을까? 그리고 테르몰필라이 협곡에서 레오디나스는 자신들의 병력보다 15배나 많은 페르시아군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원동력을 어떻게 끌어 냈을까?
인간은 기계가 아니므로 아무런 감정 없이 지시하는 대로 행동할 수 없는 존재다. 제각각 ‘이기적 유전자’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생존, 번영하고자 하는 강한 본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위험천만한 전투에 뛰어들어 최선을 다해 싸울 수 있도록 하는 그 기술이 바로 ‘Strategus’의 핵심 개념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고향에 두고 온 가족과 조국을 위해 명예롭게 싸우다 죽자’라는 식의 웅변이었을까? 물론 그러한 웅변력도 상당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 했을 것이지만 그것 만이 다는 아니었을 것이다. 웅변은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활용할 수 있을 뿐, 막상 전투가 시작되면 전혀 활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 이제 천둥 같은 함성과 함께 사기와 살기가 충천한 양쪽의 병사들이 정면으로 부딪친다. 피가 끓어오르는 웅변의 효과도 잠시 뿐이고, 전방과 후방이 없고 사방에서 아군과 적군의 피가 튀어 오르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그야말로 처절한 전투의 한 복판에 여러분이 있다고 상상을 해보라. 이런 상황에서 Strategus로써 여러분은 전투를 승리로 이끌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전투가 벌어진 다음에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리 Strategus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것 말고는 없다. 그러나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승리를 위해 Strategus가 할 수 있는 것은 피가 끓어 오르는 비장한 웅변 말고도 많다.
이미 앞서 얘기 한대로 고대 전쟁에서 일반적인 전투방식은 단순한 육박전이었고, 이는 군사 개개인이 항상 등 뒤와 양 측면, 사방으로 죽음에 노출되어 있는 상황이었음을 의미한다. 이런 이유로 , 고대 장군들은 군사들을 빈틈없고 결속력 있는 밀집대형으로 군대를 이끌고자 하였다. 그래야만 병사들은 양쪽에 있는 동료들이 후퇴하거나 자신을 혼자 두고 떠나지 않을 것이라 믿을 수 있고 그래서 더욱 용감하게 싸워 개인의 전투력을 극대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밀집대형에서는 모든 방패가 방패를 휴대한 병사의 좌측 면뿐만 아니라 우측 면 그리고 인접한 창 부대를 방어해 주었다. 그러나 일단 대형이 무너지면 이러한 이점은 순식간에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당시 전투방식이 이러하였기에 전투에서 승리하는 공식은 매우 단순하였다. 자신의 대형은 유지하면서 적의 대형을 무너뜨리면 되는 것이다. 일단 대형이 무너지는 군대는 각개로 흩어져 도망칠 수 밖에 없었다. 달려서 도망가려고 했던 병사들은 자신의 육중한 방패를 버리지 않으면 안 되었고, 그래서 아직까지도 ‘방패를 버리는 자’는 그리스어로 도망병, 비겁자를 의미하는 단어로 쓰이고 있다. 고대 서양 전투는 대부분 대량살상으로 이어졌는데 이는 전투 자체에서가 아니라 전투가 끝난 뒤 도망병들에 대한 대학살의 관습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팔랑크스’라고 불리던 전투밀집대형을 유지하는 것은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왕과 장군들 소위 Strategus들도 장비를 잘 갖춘 팔랑크스의 맨 앞에서 싸우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병사들과 똑같은 위험에 노출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고대의 그리스의 장군들은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개개 병사들의 결속을 강화하여 전투력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정신무장과 소위 팔랑크스라고 하는 전투대형 유지 방법을 열심히 훈련 시켰다.
팔랑크스라는 대형 안에서 병사들은 스스로 가공할 착탄거리를 갖춘 기다란 창, 근접전에 활용할 수 있는 칼과 방패라는 개인 전투 장비를 갖추고, 부분적으로는 옆 병사의 방패로부터 보호를 받기 때문에 머리에서 발끝까지 자신을 방어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자신이 적으로부터 보호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함으로써 심리적으로 안정되며 자신 또한 옆 전우의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해 싸우고자 하는 의지를 강화할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은 팔랑크스 대형으로 그리스 중갑보병들은 마라톤, 테르몰필라이, 플라타이아 등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결정적 전투에서 싸워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이 글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전문가 이건호님이 기고한 연재물입니다. 디지털 비즈니스 생존에 필요한 여러 가지 전략 이야기를 주기적으로 들려줄 예정입니다. 글을 보고 의견 있으면 아래 댓글 혹은 hello@performars.com으로 보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