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인생이 후반전으로 접어들면 얘기는 달라진다. 인생 후반전은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바다 혹은 사막을 건너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바다나 사막은 고정된 지형지물이 없다. 혹시 사막 에는 고정된 지형지물이 있지 않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 20대 방황하던 시절 사하라 사막을 직접 건너면서 인생을 살아가는 새로운 방법을 배운 스티브 도나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생이란, 특히 변화의 시기에 있어 인생이란 사하라 사막을 건너는 것과 같다. 끝은 보이질 않고, 길을 잃기도 하며,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가 신기루를 좇기도 한다. 사하라 사막을 건너는 동안에는 언제 건너편에 다다를지 알 수가 없다. 우리의 인생도 많은 부분이 그 모습과 닮았다. 목표를 볼 수가 없고, 목적지에 다다랐는지 여부도 알 길이 없다."
산은 아무리 높아도 정복할 고정된 ‘정상’이 있지만 바다나 사막에는 고정된 ‘정상’이란 없다. 아니, 있다가도 사라진다. 인생 후반전이 그렇다. 과거 산업화 시대의 인생 후반전은 패턴이 매우 단순했다. 정년을 보장하는 직장에서 열심히 일을 하다가 60세 전후로 은퇴를 하면, 자식들도 대충 다 커서 각자 자신의 길을 가고 있고, 큰 돈은 없어도 집 한 채에 퇴직금으로 두 부부가 평온한 노년 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처럼 수명이 길지 않아서 은퇴 후 10-20 년 정도 평균적으로 살아 갈 수 있는 자금만으로도 큰 걱정 없이 살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인생 후반전은 어떤가? 일단 4차 산업 시대에 사는 현대인의 인생 후반전은 연령 측면에서 보면 과거 다른 산업화 시대보다 빨리 시작된다. 그리고 더 늦게 끝이 난다. 인생 후반 전이 매우 길어졌다는 의미다. 게다가 예측이 어려운 불확실성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우리나라는 벌써 몇 년째 2-3% 대의 저성장에 머물고 있다. 앞으로는 경제가 70-80년대처럼 고도성장을 하면서 다시 모든 기회가 되살아날 날이 올 것 같지 않다. 잘 알겠지만 지금의 저성장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 또 우리나라만의 문제도 아니다. 오래 된 선진국가들, 미국이나 일본, 유럽이 저성장 기조에 들어 선 것은 이미 오래 된 얘기이다. 그런데 요즘은 세계경제의 성장 견인차 역할을 하던 중국도 심상치 않다.
이렇듯 과거처럼 전 세계적으로 특별한 경제 위기가 온 것도 아닌데 세계경제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국가들의 성장속도가 느려지고 있다. 저성장이 만성화되어 간다는 징조이다. IMF 등 세계적 경제기구의 수장들도 전 세계가 ‘저성장의 덫’에 빠져 들 것이라고 경고를 했고 경제 학자들은 이런 시대를 뉴노멀(New Normal), 즉 ‘새로운 정상’이라고 명명했다. 이제는 저성장이 ‘정상’이라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4차 산업혁명'이 이러한 저성장의 돌파구가 되어 줄 것이라 얘기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4차 산업이 경제성장에 미칠 영향에 대해 부정적 의견과 긍정적 의견이 갈린다. 인공 지능이나 로봇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새로운 성장의 기회를 만들어 내겠지만 그것들이 동시에 인간들이 누리고 있는 많은 일자리들을 대체할 것이라 인간에게 이로운 성장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견도 많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향후 경제성장에 대해서 낙관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렇게 저성장의 원인이 구조적이기 때문에 앞으로 개별기업 차원에서는 고성장을 누리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겠지만 세계 경제 전체가 다시 활성화 되어 고성장을 구가하는 그런 시기는, 글쎄 쉽게 올 것 같지가 않다. 경영 환경이 이렇다 보니 기존의 기업들은 돌아가는 상황을 관망하면서 구조조정을 통한 효율성 제고 말고는 딱히 할 것이 없을 것이다. 일자리를 창출하기 싫어서 하지 않는 것이 아닌 것이다.
이렇게 우리나라 경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던 대기업들이 자신들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면 당연히 개인들은 심대한 영향을 받게 된다. 당장 눈 앞에 보듯이 청년들의 취업난은 심해진다. 그리고 기업에 속해 있는 중년들의 소득도 줄어든다. 이것을 가정의 관점에서 표현 하면 중년인 아버지의 월급은 줄어 드는데 청년인 아들/딸은 취직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나만 해도 부모님의 소득이 줄어들 무렵 내가 취직을 해서 부족분 이상의 소득을 창출할 수 있었다. 그래서 가정 전체의 소득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가정의 소득이 줄어 드는 그런 실정이다.
게다가 또 하나, 매우 중요한 요인이 있다. 바로 의학기술을 발달로 인해 인간의 평균 수명이 극적으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평균수명이 늘어난 것은 분명 좋은 현상인데도 이것이 정작 현재의 삶에는 또 하나의 부담으로 작용한다. 과거에는 은퇴 이후 10년, 길어야 20년 정도의 노후대책이면 충분했던 것이 이제는 은퇴도 빨라졌고, 수명도 늘어났기 때문에 은퇴 이후 30-40년 정도 기간을 위한 '노후대책'이 필요하다. 이런 장기간의 노후 대책을 위해서는 당장 버는 돈에서 일부를 적립해 두어야 하는데 그것이 이만저만한 부담이 아니다. 오래 살 수 있는 것이 현재 삶에 부담이 된다니 지독한 역설이다.
이 모순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한 인간이 살아가는 기간이 늘고 이에 필요한 비용은 늘어났 음에도 돈을 벌 수 있는 안정적 수단은 줄어 들고 있다’이다. 수명도 늘어나고 소비수준도 높아져서 사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늘어났는데, 가정에서는 아버지의 소득이 주는 반면 아들과 딸은 아직 취직이 안 된다. 또 더 이상 경제가 고도성장을 하지 않으니 이제는 '개천에서 용 날' 가능성은 줄어 들어서 언젠가 쥐구멍에 볕들듯이 대박이 터져 부자가 되리라는 꿈도 꾸기 어렵다. 이 렇게 세상살이가 어려워지니 나 하나 건사하기도 쉽지 않은데 애를 낳고 키우는 것은 정말 생각 하기 어렵다. 그래서 젊은 부부들은 임신을 좀 더 미룬다. 언제 애를 가질지는 정하지 않고서 말이다.
더 심각한 것은 결혼할 나이의 사람들이 아예 결혼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기성세대들은 점점 나이를 먹는데 이렇게 출산율이 떨어지게 되면, 결국 충분한 노동력을 확보할 수 없어서 경제는 더욱 활력을 잃고 말 것이다. 경제의 저성장으로 유발되는 악순환이 지속될 수 있다. 정부도 '일자리 창출' 이다 ‘정규직 전환’이다 해서 젊은 세대들의 불확실성을 줄여주려는 정책을 최우선적으로 실행하게 된다. 그도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 나라의 미래가 그들에게 달려 있지 않은가.
그래서 그 덕분에 인생 후반전을 사는 중년들의 삶은 더욱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 정책적 우선순위에서도 젊은 세대들에 밀리지만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로 자식들에게 밀리게 된다. 이러다 보니 이미 부와 명예, 권력 같은 기득권을 확보한 중년들이야 걱정할 것이 없겠지만 그렇지 못한 대부분의 중년들은 내몰리듯 직장을 나와서 망망대해에 그야말로 '일엽편주'타고 떠도는 그런 신세가 되기 일쑤이다. 그래서 인생 후반전은 산을 올라가는 게임이 아니라 바다를 건너는 게임인 것이다. 그것도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불확실성의 바다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