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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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2월 17일

과거에 대해서는 주로 죄책감, 분노, 자부심과 같은 부정적 감정이 결부되듯이 미래에 대해서는 주로 두려움, 욕망 같은 부정적 감정이 결부된다. 두려움이 무슨 감정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두려움은 아주 원초적인 감정으로 늘 우리 마음 속에 존재한다. 특히 오지 않은 미래, 즉 불확실한 상황에 대한 두려움은 유사이래로 늘 인간에게 존재했다. 사실 불확실한 상황에 대한 본능적 두려움 때문에 인류는 거친 원시 환경에서도 생존력을 높일 수 있었다.

 
두려움과 같은 본능적 감정은 복잡한 프로세스를 거치지 않고 바로 근육과 연결이 되어 있어서 숲 속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만 듣고도 바로 근육이 작동하게 된다. 나도 동네 생태공원을 산책 하다가 숲 속에서 부스럭대는 소리를 듣게 되면 무의식 중에 몸을 움찔하면서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게 된다. 그게 덩치가 큰 까치나 맷비둘기가 먹이를 찾아 걷는 소리, 또는 길고양이들이 어울려 노는 소리임을 알게 되면 그냥 무심히 지나친다. (물론, 먹이 찾아 헤매는 멧돼지 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런 주택가 생태공원에서 부스럭대는 소리가 다 그렇지 뭐’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불확실성이 사라졌을 때의 반응일 뿐이다. 방금 몇 초 전까지만 해도 예기치 않은 부스럭 소리에는 마치 야생 정글에서 천적을 만났을 때와 같은 두려움이 엄습한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아주 먼 옛날 정말 숲 속에서 늑대나 호랑이를 마주친 조상들의 두려움이 고스란히 내 유전자 속에 전해 내려 온 것이다. 아마도 내 조상들에게 그런 두려움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나는 여기에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부스럭 소리에도 근육이 자동적으로 반응하지 않았던 인간들은 대부분 늑대나 호랑이의 먹이가 되었을 테니 말이다.
Under boss pressure
그런데 이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찬찬히 들여다 보면 그 본질적 대상은 '상실'임을 알 수 있다. 모든 두려움은 내가 가진 소중한 뭔가를 상실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것이다. 우리가 호러 영화를 보면서 초자연적인 존재, 즉 귀신이나 악마 따위를 두려워하는 것도 그 본질은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다. 바로 자신의 생명, 목숨을 빼앗기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추악하게 생긴 괴물을 두려 워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것들이 우리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는 것을 두려워한다.

엄마의 품 속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새근새근 자는 아기에게도 엄마로부터 떨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그래서 엄마가 마실이라도 나가려고 살짝 애를 떼어내면 애들은 어떻게 알아 차렸는지 울고 불고 난리를 친다. 엄마라는 포근한 존재를 상실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것 이다. 호시절을 보내는 사람들에게도 두려움이 있다. 호시절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두려움은 더욱 커진다. 호시절이 다 가고 나면 어떡하나 하는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 무의식 속에서 새록새록 자라기 때문이다.

소중한 것을 상실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특히 불확실성에 민감하다. 사람들은 불확실성을 위험한 것과 동일시하는 데 사실 '불확실성' 그 자체는 중립적인 것이라 반드시 위험한 것만은 아니다. 말 그대로 불확실하기 때문에 위험할 수도 있지만 또 뜻하지 않은 행운을 가져다 주 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들에게는 불확실성이 위험하다는 편견이 있다. 그래서 불확실성을 회피하 려는 성향을 가지게 된다.

네덜란드의 조직심리학자 홉스테드의 조사연구에 따르면 특히 우리나라는 일본과 더불어 세계적으로 불확실성 회피 지수가 높은 군에 속한다. 불확실성 회피 지수가 높다는 것은 불확실성을 싫어한다, 혹은 두려워한다는 의미다. 이런 경향이 강한 문화에서는 어떻게든 불확실성을 없애려고 노력한다. 그 결과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래가 보다 더 확실해지게끔 하기 위해 지금 뭔가를 열심히 한다. 그래서 저마다 바쁘고 안절부절못하며 감정적이고 공격적이며 활동적이다. 외국 사 람들이 ‘한국’하면 떠오른다는 ‘빨리 빨리‘도 그런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Male mountain biker looking at map in the forest
그래서 불확실성 회피경향이 높은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처럼 보인다. 적어도 스스로 항상 바빠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쁘지 않다는 것은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해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는 것이 되어 두려움을 더욱 증폭시킨다. 열심히 일하는 것은 좋지만 그 동기가 불확 실성에 대한 두려움이기 때문에 늘 불안해 보인다.

반면, 불확실성 회피 경향이 약한 문화에서는 불안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다. 불확실성을 회피하지 않는다는 것은 미래가 어떻게 펼쳐지던 받아들이고 헤쳐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난기류에 흔들리는 비행기 안에서 오히려 좌석에 몸을 깊이 누이고 흔들림을 즐기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이런 문화에서는 공격성과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자제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감정적으로 행동하거나 요란스럽게 행동하는 사람은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일을 대하는 태도에 도 차이가 난다. 필요하다면 열심히 일할 수도 있지만, 내부에서 솟아나는 어떤 압력 때문에 활동을 끊임없이 계속하지는 않는다. 보다 긍정적인 동기, 재미나 보람 때문에 일에 몰두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그들은 쉬는 것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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