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애자일 방법론은 2001년 17명의 선구자적 소프트웨어 개발자들로부터 시작됐다. 개발 기간이 길고, 경영진의 사전 계획 및 승인을 기반으로 움직이는 워터폴(waterfall) 방식에 불만이 많던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미국 유타주의 한적한 스키 리조트에 모여 완전히 새로운 개발 원칙인 ‘애자일 선언문(agile manifesto)’을 만들어 발표한 것이다.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고 최선을 다하더라도 소비자들의 니즈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경우 IT 개발 프로젝트는 실패할 수 있기에, 소프트웨어 개발 과정을 소비자들의 니즈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만들어 실패로 인한 비용을 최소화하자는 방법론이다.
소프트웨어 개발에서 워터폴 방식과 애자일 방식 비교(출처: Waterfall vs. Agile, Colona.rsd7.org)
그 이후 여러 명의 마케터들에 의해 이러한 애자일 방법론을 불확실 경영환경 속에서 수행해야하는 오늘날의 마케팅에 적용 하려는 시도가 일어났다. 이러한 움직임에 호응하여 2012년 짐 애월 등 여러 마케팅 전문가들이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SprintZero’라는 모임에서 여러 마케터들의 의견을 집약하여, 애자일마케팅 선언문(Agile Marketing Manifesto)을 발표하게 된다. 비록 애자일마케팅 선언문은 아직까지 2001년 발표된 소프트웨어개발자들의 애자일선언문처럼 널리 인정받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애자일마케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데 큰 공헌을 한 것만은 틀림 없다.
애자일마케팅 선언문을 만든 마케팅 전문가들
2012년 ‘SprintZero’에서 발표된 애자일마케팅 선언문은 ‘7대 핵심가치’와 ‘10대 원칙’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도 ‘7대 핵심가치’를 통해 보다 명확한 애자일마케팅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
- Validated learning over opinions and conventions (주관적 견해와 관행 보다 ‘검증된 학습‘)
- Customer focused collaboration over silos and hierarchy(사일로와 계층 보다 ‘고객중심의 협업‘)
- Adaptive and iterative campaigns over Big-Bang campaigns (빅뱅 캠페인 보다 ‘적응력 있고 반복적인 캠페인’)
- The process of customer discovery over static prediction (정적인 예측보다 ‘고객 발견 프로세스’)
- Flexible vs. rigid planning (엄격한 계획 보다 ‘유연한 계획’)
- Responding to change over following a plan (계획을 단순히 따라가기 보다 ‘변화에 대응하기’)
- Many small experiments over a few large bets (크게 베팅하기 보다 ‘작은 실험 많이 하기’)
학습 vs. 관행 : 주관적 견해와 관행 보다 ‘검증된 학습’
때로는 훌륭한 베스트프랙티스가 일을 망치는 경우도 있다. 다시 말해서, 유명한 외국회사에서 성공했던 디지털마케팅 캠페인이 반드시 우리회사에게도 성공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이름이 난 회사가 시도해서 성공한 방식이므로 모방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것은 이해하지만, 베스트프랙티스가 만병통치약이라고 생각하면 이렇게 변화가 빠르고 불확실한 경영환경에서는 큰 코 다치기 십상이다. 물론 그들의 아이디어를 참조할 수는 있지만 실험을 통해 우리의 잠재고객에게 가장 적합한 캠페인이 무엇인지를 알아 내는 것이 성공의 가능성을 보다 높인다.
애자일마케팅은 ‘빠른 실패를 통한 학습’을 선호한다. 소규모 실험을 통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더 적합한 마케팅 방안을 찾아내는 것, 이것이 애자일마케팅이 추구하는 가장 큰 가치이다.
협업 vs. 사일로 : 사일로와 계층 보다 ‘고객중심의 협업‘
사일로(silo), 즉 기업의 부서들이 상호 협조 없이 시멘트공장 사일로처럼 독자적으로 업무를 진행하게 될 때 많은 문제들이 생기게 된다. 비근한 예로 사내에 있는 여러 조직이 각자 독자적으로 고객 대면 콘텐츠를 만들면 고객은 같은 기업을 대상으로 일관적이지 않은 고객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애자일마케팅은 이러한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고객중심(customer focused)’으로 마케팅 관련 조직들이 협업할 것으로 촉구한다. 애자일마케팅팀은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동으로 작업할 수 있도록 구축되어야 하고, 내부의 업무수행 방식 또한 ‘고객중심의 협업’이 가능하도록 충분히 유연해야 한다.
사일로식 조직들은 지식과 노하우 내부 축적과 저장이 용이하다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개인이나 특정 그룹이 학습과 시행착오 등을 통해 배운 내용이 다른 조직과 원활하게 공유되지 못하고, 개인이 기업을 떠날 때 지식과 노하우도 함께 유실된다. 이렇게 되면 다른 조직들은 필요한 지식과 노하우를 독자적으로 익혀야 하기 때문에 기업 전체적으로 볼 때 총 학습기간이 길어진다. 조직 횡단적이고 기능 횡단적인 협업은 지식이나 노하우가 자유롭게 흘러 다니도록 하기 때문에 애자일마케팅은 보다 나은 고객 중심의 마케팅을 위해 이를 중요한 가치로 강조하는 것이다.
적응 vs. 빅뱅 : 빅뱅 캠페인 보다 ‘적응력 있고 반복적인 캠페인’
빅뱅 캠페인은 앞서도 언급했지만, 과거 관행적으로 수행된 기업 마케팅 방식이다. 수개월에 걸쳐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고 그 계획에 따라 마케팅 캠페인들을 빅뱅식으로 터트리고, 이를 또 수개월간 실행한다. 그러나 빅뱅 캠페인이 효과를 내지 못하면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마땅히 없었다. 사실 마케팅 전략의 수립과 캠페인 실행의 주기가 길어서 그 주기가 다 끝나기 전에는 캠페인이 효과를 내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도 없었던 게 현실이다.
불확실한 환경 속에서 이렇게 빅뱅식 캠페인처럼 한 싸이클을 다 돌 때까지 깜깜이로 마케팅을 수행하는 것은 리스크가 너무 크다. 그래서 대응책으로 나온 것이 ‘적응형(Adaptive) 캠페인’ 이다. 불확실한 환경에서는 작은 전략으로 시작하고, 신속하게 캠페인을 구현하고, 고객의 반응에서 즉각적으로 통찰력을 얻고, 또 다시 전략과 실행을 조정하고 계속 배우는. 비선형 적응형 접근법이 기존의 선형 빅뱅 캠페인보다 바람직하다는 것이 애자일마케팅이 주장하는 바이다.
적응형 캠페인들은 변화하는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적절하게 조정되는 캠페인의 하위요소들로 인해 마치 살아 있는 유기체와 같이 진화하는 특징이 있다. 특히, 고객과의 상호 작용을 통해 환경에 적응해 나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응형 캠페인은 실행하는 많은 고정 리소스가 들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 단기간에 많은 것을 배우고 신속하게 많은 작업을 수행 할 수 있기 위해 항상 가벼운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고객 발견 vs. 정적인 예측 : 정적인 예측보다 ‘고객 발견 프로세스’
많은 마케터들이 미래 고객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 지금도 시장조사를 통한 예측에 의존하지만 마케터들이 예측하는 방식으로 행동하지 않는 고객들이 점점 더 늘어 나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고객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 조사를 통한 ‘예측(prediction)’보다는 고객과의 접촉을 통한 ‘발견(discovery)’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애자일마케팅은 이러한 고객 발견을 더욱 중시한다. ‘고객들은 뭘 좋아하나? 그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최근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주제는 무엇인가? 또 그들의 가장 큰 걱정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들을 고객에게 직접 묻거나 또는 고객의 행동을 직접적으로 관찰함으로써, 고객에 대한 새로운 특성을 지속적으로 발견(discover)해 나가는 것을 선호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오랜 시간이 걸리는 대규모 조사를 통한 예측을 보다 더 정확하고 시의적절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불확실한 환경에서는 고객의니즈가 더욱 변덕스럽게 변화하는 만큼 전문가들의 정교한 예측보다는 고객과의 지속적인 소통, 그리고 면밀한 관찰 등을 통한 ‘발견’을 애자일마케팅의 핵심가치로 삼는 것이다.
유연 vs. 엄격 : 엄격한 계획 보다 ‘유연한 계획’
이 핵심가치로 인해 종종 애자일마케팅이 마치 ‘무계획’을 주장하는 것처럼 오해를 불러 일으킨다. 그러나 불확실한 환경으로 인해 그 복잡성이 더욱 높아지는 애자일마케팅에서 계획은 반드시 필요하다. 계획이 없다면 애자일마케팅은 실패할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마무리된 그런 엄격한 계획이 아니라 마치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빌트인(Built-in)가구만 들어 가 있는 새아파트 같은 계획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들어오는 사람의 취향이나 환경의 변화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인테리어할 수 있는 그런 가능성을 열어 두는 정도의 계획 말이다.
시장 상황이 바뀌거나, 고객발견을 통해 새로운 데이터가 들어오거나, 경쟁자의 움직임이 바뀌면 바로 적응해서 변경할 수 있는 그런 정도의 유연성을 가진 계획이 애자일마케팅에서는 필요하다. 완전히 처음부터 다시 계획을 짤 필요 없이, 당장 직면하고 있는 이슈에 맞추어 계획을 수정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다시 한번 계획은 애자일마케팅에서도 여전히 가치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단, 유연한 계획이 엄격한 계획보다 선호될 뿐이다.
변화 vs. 계획 : 계획을 단순히 따라가기 보다 ‘변화에 대응하기’
5번 핵심가치와 같은 선상에서 애자일마케팅은 그저 ‘닥치고’ 계획을 따르는 것보다 변화에 대응하는 것을 선호한다.
초기의 로봇청소기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중간에 장애물을 만나 더 이상 전진할 수 없을 경우에도 로봇청소기는 프로그램된 대로 직진만 하려 한다. (물론 요즘은 장애물을 피하고 빈공간을 찾아 가는 보다 스마트한 로봇청소기가 있지만)
여러 가지 좋지 못한 징후가 보임에도 한번 세워진 계획은 초지일관 수행한다는 초심을 유지한 채 그대로 밀고 나가는 마케터들도 그 로봇청소기와 비슷한 운명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항상 환경의 변화를 센싱하고 변화로 인한 기회와 위협에 대한 대응을 기존 계획에 적절히 반영하는 것이 애자일마케팅이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 중 하나이다.
실험 vs. 베팅 : 크게 베팅하기 보다 ‘작은 실험 많이 하기’
애자일마케팅이 추구하는 마지막 가치는 대형 프로젝트에 비해 작은 프로젝트를 더 선호한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소규모의 실험적 캠페인을 신속하게 시행함으로써 마케팅의 반복주기를 더 빨라지게 만들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소규모의 실험적 캠페인은 투자하는 자원이 상대적으로 적을 것이므로 만약 실패한다 해도 큰 손실을 보지는 않는다. 손실은 적으면서 빠른 학습을 통해 더욱 시장의 요구에 근접한 새로운 마케팅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다.
크게 배팅을 하면 크게 돈을 따거나 아니면 다 잃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불확실성이 높은 환경에서 큰 베팅은 무모한 시도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애자일마케팅이 무조건 작은 베팅만 하고 큰 베팅은 간이 작아서 못한다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불확실한 환경이라 해도 빅 캠페인을 해야 할 때는 과감하게 해야 한다. 다만, 애자일마케팅은 다양한 작은 실험을 통해 빅 캠페인의 성공 가능성을 최대화 할 때까지 때(時)를 기다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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