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모델을 정립하라 - 자기, 가정, 관계, 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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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12월 17일

‘흐르는 삶’에 대해 얘기하면서 나는 그동안 ‘흐른다’는 것에 대한 얘기만 했다. 

그러나 ‘삶’이라는 개념도 중요하다. ‘삶’이 바로 흘러가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흐르는 삶‘을 살고자 한다면 ‘삶’을 변화시켜야 한다. 그러려면 객관적으로 관찰이 가능한 삶에 대한 개념, 즉 모델이 있어야 한다. 나는 그것을 ‘라이프 모델’이라 부르기로 했다. 사람마다 견해가 다를 수 있으나 나는 라이프 모델의 핵심 요소를 ‘자기, 가정, 인간관계, 직업’ 이렇게 네 가지로 본다.

첫 번째 요소인 ‘자기’란 자신의 몸과 마음은 물론이고 나아가 본질적인 의식 수준까지를 의미한다. 본인의 육체적/정신적 건강, 그리고 의식 수준은 당연히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두 번째 요소인 가정은 좁게는 부모와 자식이 주축을 이른 가장 기본단위의 핵가족에서 넓게는 가까운 친인척까지, 친족 공동체를 의미한다. 가정을 어떻게 꾸려 나가느냐 역시 삶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라이프 모델의 세 번째 요소인 인간관계란 가족이 아닌 이웃이나 친구, 회사 동료 등과 같은 주변 이해관계자들과의 관계이다. 얼마나 자신에게 적합한 공동체 네트워크 속에 속해 있느냐 또한 삶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마지막이 ‘직업’이다. ‘직업’이란 자기실현을 위한 것이면서 동시에 생계를 위한 돈을 벌어들이는 일을 의미한다. 당연히 어떤 직업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삶의 유형이 달라진다.

 

라이프모델

 

‘자기, 가정, 인간관계, 직업’ 이상 네 가지는 한 인간의 삶을 받쳐주는 기둥이다. 네 개의 기둥이 튼튼한 것은 물론이고 균형 있게 발달되어 있다면-네 개의 길이가 동일하다면- 삶은 튼튼한 네 발을 가진 탁자처럼 안전할 것이다. 가령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더불어 의식 수준을 진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가족과 가까운 친척들이 건강하면서 화목하고 이웃, 직장, 친구 등 인생의 핵심 이해관계자들과 관계가 좋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직업을 가지고 경제적으로 궁핍하지 않게 수익을 올리고 있다면, 그의 삶은 평평한 네발 테이블처럼 매우 탄탄하게 균형이 잡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탁자는 여러 가지 음식이나 물건을 올려놓아도 견딜 수 있다. 다시 말해 튼튼하고 균형 잡힌 ‘라이프 모델’은 힘든 고난도 견뎌 내면서 유유히 흘러갈 수 있다.

네 가지 기둥 중 어쩌다가 한 가지를 상실했다면 아무래도 삶은 그 전보다는 불안정해진다. 그러나 세 발로 버티는 탁자도 있다. 남은 세 개를 튼튼하게 유지하고 균형 있게 배치한다면 그런대로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다. 실제로 어떤 사람은 독신으로 살아서 가정이라는 기둥이 미미할 수 있다. 또는 실직을 하거나 아니면 불안정한 비정규직일 경우는 ‘직업’이라는 기둥이 부실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라도 나머지 세 개의 기둥을 튼튼하고 균형 있게 유지한다면 삶은 무사히 흘러간다. 물론 네 개가 다 있는 것보다는 못하겠지만 어쩔 수 없다면 세 개로도 버틸 수는 있다. 그렇게 버티다 보면 부실한 한 개의 기둥을 고칠 수 있는 기회가 오기도 한다. 실직을 한 경우에도, 본인의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가정이 행복하고, 주변 사람들과 좋은 관계와 교류를 한다면 다시 취업을 하거나 스스로 창업을 할 수 있는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다.

그러나 라이프 모델을 구성하는 네 가지 요소 중 두 개 이상에서 실패하면 삶은 몹시 위태로워진다. 두 개나 한 개의 기둥으로 버틸 수 있는 탁자는 잘 없는 데다가 있다 해도 그런 탁자 위에는 가벼운 잡지 외에 다른 물건을 올려놓을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삶이 작은 고난에도 힘겨워하며 위 태위태 해지는 것이다. 실직을 했는데, 건강마저 안 좋아졌다든가, 아니면 가정에서 불화가 생겼다든가 하는 경우를 생각해보라. 라이프 모델은 급속히 불안정해지면서 다른 기둥들에 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렇듯 라이프 모델의 네 가지 요소 하나하나가 다 중요하고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여러분들도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몸이 아프면 가정생활이나 직업, 인간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또 가정에서 좋지 않은 일이 있어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삶에서 어떤 문제가 생겼다면 그것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라이프 모델의 네 가지 요소들을 일일이 전수 조사해야 한다. 하나에서 원인을 찾았다고 해서 모든 원인이 밝혀진 것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토퍼 숀 셰어 박사에 따르면 인간의 삶에 타격을 입히는 핵심적인 원인들은 의외의 곳에서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그는 M이라고 하는 한 중년 남성의 사례를 들어 이를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M은 좋은 풍채를 가진 존경받는 기업가였고, 사랑하는 아내와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주기적으로 문제를 일으켰다.

“가을에 접어들 무렵이었다. 나는 울적하고 예민한 상태가 되었다. 나는 근심을 덜기 위해서 일도 게을리하고 가정도 돌보지 않았다. 무기력한 느낌에서 벗어나려고 술을 마셨다. 곧 마음이 초조해졌다. 모든 것이 내가 원하는 것과 반대로 돌아가고 있었고 나를 방해했다. 나는 견딜 수 없는 상태가 되었으며 가족들에게 위험한 존재가 되었다. 이런 상태 때문에 나의 일은 엉망이 되었다”

한 인간의 라이프 모델이 손쉽게 무너지는 것을 보고 있는 듯하다. 그저 단순히 우울증이려니 했지만 봄이 오면 M은 다시 정상을 찾았다. 그러다 보니 병원에 가서 따로 치료를 받지 않았다. 그러나 다시 가을이 오면 M의 상태는 엉망이 되어 겨울까지 악몽 같은 삶을 살아야 했다. 이런 순환이 지속될수록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들은 물론이고 주변의 직장 동료, 친구들까지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정상적이던 사람이 갑작스레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자 M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도 근본 원인을 찾으려 노력을 했다. 그러나 M은 몸에도 별다른 이상이 없었고, 가정도 M 자신을 제외하면, 아무 문제가 없었다. 사업도 큰 변동 없이 잘 굴러가서 사업 때문에 스트레스받을 일도 없었다. 문제는 있는 데 원인을 찾지 못하는 것이었다.     

 

삶의 지혜

 

결국 ‘봄/여름= 정상/행복, 가을/겨울= 비정상/불행’의 순환을 몇 번 보내고서야 M이 앓고 있는 병이 ‘계절성 우울증(SAD, seasonal affective disorder)’이라는 것을 어렵사리 발견했다. 가을, 겨울에 햇볕의 양, 즉 일조량이 줄어들면서 우울증을 유발하는 일종의 희귀병인 것이다. 자연환경의 변화에 영향받은 육체가 마음에 영향을 미치고 그것이 라이프 모델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에게 악 영향을 미친 것이다.

라이프 모델의 네 개 기둥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이 되어 있어 어느 하나에서 사소한 균열이 생기면 다른 기둥들로 급속하게 전염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러나 반면에 그렇기 때문에 한 기둥이 잘 관리되어 좋아지면 좋은 영향도 다른 기둥들로 급속히 전염될 수도 있다. 경제가 크게 침체되어 나라 안팎의 사정이 안 좋을 때라도 ‘가정’ 하나 화목하면 사람들이 그럭저럭 버텨 나갈 수 있는 것이나, 혼자 사는 사람들의 경우엔 ‘몸과 마음’만 건강하면 그런 삶의 위기들을 견뎌낼 수 있는 것 등이 다 라이프 모델의 이런 특성 때문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라이프 모델의 네 가지 핵심 요소에 대해서는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조금이라도 ‘삶’이 세상과 마찰을 일으킨다고 느껴지면 잠깐 멈춰 서서 ‘자기, 가정, 관계, 직업’이 네 가지 요소를 점검해 보기 바란다. 문제가 직업 분야에서 생겼다고 해서 그것 만을 점검해서는 안 된다. M의 사례에서 보듯이 원인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네 가지를 함께 점검해야 진짜 원인을 찾을 수가 있다.

또한 삶의 시기에 따라 네 가지 요소들의 상대적 중요성이 많이 다르다는 것도 중요한 특성이다. 내 경우를 예로 들자면 30대에는 아무래도 사회 초년생으로서 자리를 잡아야 하기 때문에 ‘직업’이라는 요소에 가장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써야 했다. 사실 새로운 가정을 꾸리다 보니 ‘가정’도 매우 중요했다. 아내는 물론이지만 아이들도 태어나고, 이제는 처가까지로 가정이 확대되어 결혼 전보다 범위가 더 넓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그때, 가정이라는 요소보다는 직업에 올인을 했다. 직업에서 성과를 거두면 가정은 자연스레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것이 40대로 넘어가니 가정으로 시선이 가기 시작했다.

가정이 흔들리면, 라이프 모델 전체가 위태하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가장으로서 자신이 맡은 일, 즉 열심히 벌어서 가족들 먹고사는 문제만 해결해주면 다 될 줄 알았는데, 그건 나의 큰 착각이었다. 나는 그냥 ‘직업’에 충실했을 뿐이고, ‘가정‘은 보너스 정도로 생각했음을 깨달았다.   

장남으로 자라면서 부모님이 내게 주입한 프로그램, ‘장남이 잘되어야 집안이 잘된다’가 결혼 후에는 ‘내가 잘되면 가족도 잘 되는 거야’라는 생각으로 변했는데 이런 생각은 균형 있고 유연한 라이프 모델에 치명적인 결함이었다. 가정은 가장이 자기실현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 ‘부수적 환경’이 아니고 가정 안에 있는 구성원 하나하나는 모두 서로 다른 꿈과 희망을 가진 개별자들임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 속에서 나의 위치와 역할을 다시 정립하기 시작한 것도 40대 이후인 것 같다. 물론 40대는 한창 일이 많아 바쁠 시기이기도 해서 여전히 삶의 많은 부분을 ‘직업’이 차지했지만 상대적으로 조금씩 가정의 중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비중을 늘려가고 있다.

 

라이프모델

 

50대에 접어들면서는 ‘자기’가 결정적으로 중요해졌다. 자기 계발은 20-30대 직업을 위해 신경을 쓴 적이 있다. 필요한 외국어도 공부하고 각종 전문지식을 공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 한 자기 계발이라기보다는 ‘직업‘을 위한 ‘스펙 쌓기’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50줄이 넘어가는 지금, 나날이 기능이 떨어져 가는 육체를 위해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것보다 훨씬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보다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한 ‘참 공부’이다. ‘참 공부’란 다른 목표가 있는 것이 아니고 공부 그 자체가 좋아서 하는 공부이다.   이를 통해 매일매일 어제보다 더 나은 의식을 가진 존재가 될 수 있다면 그 또한 좋을 것이다. 동시에 서서히 주변 사람들에게로 시선이 가기 시작했다. 함께 일하는 파트너들, 사느라고 소원했던 친구,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인사만 하고 지냈던 이웃들과의 인간관계가 소중함을 느끼고 거기에 시간과 에너지를 쓰기 시작했다.

‘흐르는 삶’을 위해서는 라이프 모델의 네 가지 기둥이 적절한 균형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자신의 처한 상황에 따라 상대적 중요도는 조금씩 차이가 날 수 있으니 거기에 맞춰 시간과 에너지를 적절하게 배분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인생의 주기에 따라 상대적으로 더 중요해지는 요소들이 있다. 이를 소위 ‘레버리지 포인트-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지렛대로 활용하는 핵심 요소’로 활용하여 나머지 요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그것이 진정한 ‘실천적 지혜’ 일 것이다.  

그러나 라이프 모델은 삶을 통제하는 도구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라이프 모델을 활용하는 것은 삶을 통제하는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물처럼 편안하게 흘러가기 위해 구체적으로 우리가 무엇을 하면 되는지를 찾기 위한 ‘실천적 지혜’이다.

라이프 모델은 마치 흐르는 삶을 위한 자신만의 조각배 같은 것이라 보면 된다. 배가 튼튼하고 필 요한 것들이 잘 갖춰지면 물을 따라 자연스레 흘러갈 수 있다. 라이프 모델의 네 기둥에서 일어나 고 있는 일들을 이해하고 무엇이 부족한지 무엇인 과한 지를 알고 이를 잘 조정해주면 삶은 자연의 섭리에 따라 흘러가게 마련이다.

이런 삶은 우리가 현재 지니고 있는 본성과 기질을 거스르지 않고 그것을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그런 삶이 된다. 이렇게 섭리에 따라가는 경지에 이르면 우리는 뒤로 물러앉아 자신 있게 ‘손을 놓을'수 있다. 우리는 매사에 가장 바람직한 결정을 내렸다는 확신을 가지고 매일 지금/여기에 존재하며 흘러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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