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전 War of Position' vs. '기동전 War of Mov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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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6월 11일

서양에 체스가 있다면, 동양에는 바둑이 있다. 체스도 그렇고 바둑도 그렇지만 모두가 복잡하고 치밀한 전략을 가지고 싸우는 지적(知的) 게임이다. 그러나 싸우는 방식은 서로가 사뭇 다르다. 서양의 체스는 직접적인 싸움이다. 체스의 말은 상대의 말을 직접 공격해서 좋은 포지션을 확보하고, 그러한 좋은 포지션들을 활용해서 상대의 우두머리를 잡음으로서 승리를 쟁취한다. 그래서 체스는 시작부터 각 편의 군사가 정렬해 있다. 그리고 치열한 접점을 펼치고 나면 군사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마지막에는 그야말로 전략이고 뭐고 필요 없는 외통수에 몰고 몰리는 상황에 이르기도 한다. 그러니까 각자 정해진 영역을 가지고 상대의 영역을 빼앗는 게임인 것이다.  

반면 동양의 바둑은 체스에 비하면 간접적이다. 바둑도 상대의 돌을 잡기는 하지만 직접 잡지 않고 포위해서 잡는다. – 물론 바둑돌을 가지고 알까기 게임을 할 때는 예외다. – 그래서 상대에게 작은 영역을 빼앗기다가도 어느새 상대의 대마를 대상으로 포위망을 완성하여 항복을 받아내면 게임 자체를 이길 수 있다. 처음에 바둑판은 텅 비어있다. 거기에 번갈아 가면서 한 점 한 점 돌을 놓으면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는 게임인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영역을 먼저 개척하고 튼튼한 방어막을 구축하거나 상대가 구축 중인 영역을 포위해서 무력화 시키는 쪽이 승리하게 된다.   

close up of chess figure on suit background strategy or leadership concept 

둘 다 매우 재미있는 지적 게임이지만 이렇듯 싸우는 방식은 차이가 크다. 사업의 관점에서 보자면 체스의 방식은 주어진 시장에서 직접적으로 난타전을 벌여서 경쟁자를 몰아 내고 자신이 시장을 차지하는 소위 레드오션 게임이고, 바둑은 미지의 영역에서 새로운 사업모델을 개발하여 블루오션을 만들어 내는 게임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두 방식을 좀 유식하게 표현하면, ‘War of Positon’ 대 ‘War of Movement’라 할 수 있다. 우선 체스의 방식을 보면, ‘War of Position’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상대의 공격을 받지 않고 상대는 나의 공격을 받을 수 밖에 없는 포지션을 확보해 나가면 이기기 때문이다. 반면, 바둑의 방식은 ‘War of Movement’라 할 수 있다. 새로운 영역에 먼저 진입하는 것은 물론이고 상대가 치고 들어오면 끊임없이 방어막을 쌓으면서 동시에 새로운 영역으로 지속적으로 뻗어나가야 이기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사업 경영에서도 마찬가지다. 과거처럼 환경의 불확실성이 낮고 세계 경제도 고성장을 구가할 당시에 게임의 룰은 ‘War of Position’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주어진 경쟁의 장에서 가장 유리하다고 판단되는 포지션을 누가 먼저 선점하느냐의 게임이었다는 것이다. 가령, 어느 산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 시장이 형성되면 ‘대량생산을 통한 규모의 경제 확보’와 같은 산업의 핵심성공요소(Critical Success Factors/CSF)들이 정해지고, 다음은 누가 대규모 투자를 통해 대량생산 체제를 먼저 구축하느냐의 게임이었다. 유리한 고지를 경쟁자보다 먼저 점령하게 되면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경영환경은 언급한 것처럼  ‘높은 불확실성과 낮은 성장’이라는 두 개의 키워드로 대변할 수 있다. 시장은 성장하지 않는데, 미래는 더욱 불확실해 지니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수 밖에 없다. 이런 경영환경에서는 기술이 급격하게 변하고, 제품수명은 점점 짧아지고, 발매주기 역시 빨라지고, 혁신은 점점 더 빠르게 일어나며, 인터넷을 비롯한 디지털 기술들로 인해 경쟁우위의 지속시간이 굉장히 짧아진다는 특성이 있다. 이러한 초경쟁속에서는 게임의 룰이 ‘War of Movement’로 변한다.

산업의 핵심성공요소, 즉 CSF가 고정되어 있지 않고 계속해서 불규칙하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런 게임에서는 유리한 포지션을 확보하였더라도 곧 더 유리한 다른 포지션이 나타난다. 우버를 생각해보라. 기존의 택시회사들은 우버가 자신을 위협하는 경쟁자가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우버는 기존 택시회사와는 전혀 다른 게임의 룰에 따라 완전히 다른 포지션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기존 대형 호텔체인에게는 에어비앤비도 마찬가지 이유로 악몽과 같은 존재일 것이다.

이런 초경쟁 세계에서는 전방만 잘 주시하면서 자신의 고지를 지킨다고 해서 안심할 문제가 아니다. 적은 상하좌우 어디에서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는 한 곳에 머물기보다는 적이 예상할 수 없는 곳으로 먼저 움직이는 것 성패를 좌우한다.

비단, 우버와 에어비앤비 뿐만 아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산업의 지형지물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새로운 유형의 기업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아마 지금도 어디선가 그런 기업들이 잉태되고 있을 것이다.

Sprinter leaving starting blocks on the running track. Explosive start.

 

쉐어드어스 닷컴(sharedearth.com)이라는 기업이 있다. 이 기업은 애덤 델이라는 사람이 시작했다.

'델은 텍사스 오스틴에 있는 자기 집 뒤뜰에 채소밭을 가꾸길 원했다. 하지만 직접 그렇게 할 시간과 경작기술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2010년에 크레이그스리스트(Craigslist)에 다음과 같은 광고를 올렸다.

“제가 토지, 씨앗, 물을 제공하겠습니다. 당신은 노동력과 노하우를 제공해 주세요. 우리는 수확물을 50:50으로 나눌 수 있을 겁니다.“

얼마 후 텃밭을 가꾸길 좋아하지만 아파트에 살아서 그럴 수 없었던 한 여성이 연락해 왔고, 그렇게 거래가 성사됐다.‘

처음에는 놀고 있는 뒤뜰에서 텃밭이라도 경작해보려는 의도로 시작한 쉐어드어스닷컴은 이후 땅을 가진 사람과 노동력과 노하우를 가진 사람의 플랫폼으로 급속하게 성장하게 된다. 지금은 각자의 텃밭에서 생산한 유기농 농작물을 가까운 소비자들에게 유통하는 유통업에까지 진출해 있다. 그러면 앞으로 이 순박하기 짝이 없는 ‘쉐어드어스닷컴‘ 은 누구의 악몽으로 변할까?

이렇게 4차 산업의 기적적인 기술들이 점점 진화해 갈수록 세상은 어디서 어떻게 날아드는 돌에 뒤통수를 맞을는지 모르는 불확실성에 휩싸이게 된다. 이럴 때 필요한 역량이 바로 ‘민첩성 agility’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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