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들은 두려움에 발버둥 치며 안간힘을 써서 위로 기어 올라가려 한다. 때로는 옆에서 같이 기어 오르려는 타인을 머리를 밟고 올라가기도 한다. 대부분의 인간은 삶의 대부분 시간을 이런 에고ego적 에너지로 살아간다. 그러나 깨달은 사람들은 절벽 끝에 매달 린 손을 과감하게 놓는다. 두려움은 환상일 뿐임을 알기 때문이다. 천길 낭떠러지 바닥에 수직으로 내리 꽂혀도 부숴지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得樹攀枝未足奇(득수반지미족기) 懸崖撒手丈夫兒(현애살수장부아)
水寒夜冷魚難覓(수한야냉어난멱) 留得空船載月歸(유득공선재월귀)
나뭇가지에 매달려 아등바등 대는 것이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벼랑 끝일지언정 매달린 손을 놓을 줄 알아야 가히 대장부라 할 수 있거늘 물도 차고 밤도 찬데 고기마저 오지 않으니 텅 빈 배에 달빛만 가득 싣고 돌아가누나!
앞의 두 구절은 철학적이고 뒤의 두 구절은 서정적이다. 같은 내용을 처음에는 철학적으로 그 다 음에는 서정적으로 표현한 것 같다는 내 나름의 해석이다. 선시는 보통 알쏭달쏭하기 마련인데 이 시는 전체에 흐르는 내용이 비교적 분명하다.
‘무얼 그리 아등바등 대면서 사는가? 벼랑 끝에 매달린 손을 놓고 자신을 내맡기는 것이 정답이 다. 고기 잡으러 나왔는데 고기가 안 잡히면 달빛 만 싣고 돌아 간들 어떠하겠는가‘ 두려움과 욕망에 너무 매이지 말고 유유자적하라는 말이다. 특히 앞의 두 구절은 백범 김구 선생이 갓 스무 살 때 고선능이라는 스님이 큰 일을 할 사람은 과단성이 있어야 한다고 하면서 일러주었던 구절이라 한다. 그 이후 ‘현애살수장부아’라는 구절은 더욱 유명해졌다.
이 시를 볼 때 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과연 누가 또는 무엇이 우리를 벼랑 끝에 매달아 놓았는 가?‘ 처음에는 세상이라고 하는 외부의 조건들이 우리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했지만 지금은 그 범인이 확실히 윤곽을 드러낸다. 바로 두려움과 욕망, 분노와 자부심 같은 부정적 감정들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내부의 프로그램들이 우리를 항상 깎아지른 절벽의 끝에 매달아 놓는 것이다.
그러면 인간들은 두려움에 발버둥 치며 안간힘을 써서 위로 기어 올라가려 한다. 때로는 옆에서 같이 기어 오르려는 타인을 머리를 밟고 올라가기도 한다. 대부분의 인간은 삶의 대부분 시간을 이런 에고ego적 에너지로 살아간다. 그러나 깨달은 사람들은 절벽 끝에 매달 린 손을 과감하게 놓는다. 두려움은 환상일 뿐임을 알기 때문이다. 천길 낭떠러지 바닥에 수직으로 내리 꽂혀도 부숴지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절벽 끝에 매달린 손을 놓듯이 과거부터 우리를 속박해온 부정적 감정은 과감하게 놓아 버리고, 중력에 자신을 내맡기듯이 미래에 대한 불안을 일으키는 부정적 감정은 자연의 섭리에 온전히 내맡기게 되면 우리에게는 ‘지금/여기에 집중하는 힘' 이 생긴다. 과거와 미래에 연연해 하지 않고 오직 현재, 더 정확히는 지금이라는 시간의 물마루 위에 존재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물처럼 과거와 미래에 속박되지 않고 오직 흐르는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면서 살아갈 수 있다. 행복한 사람의 공통점이 바로 ‘지금/여기에 집중하는 힘’을 가졌다는 것이다. 이것 은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 봄직한 것이기는 하지만 진정한 의미와 방법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 다.
그래서 ‘흐르는 삶’을 살기 위한 전략은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표현할 수 있다
1. 과거를 놓아 버린다.
2. 미래를 내맡긴다.
3. 현재에 존재한다.
과거를 놓아 버린다는 것은 과거에 일어난 일에 대해 생기는 부정적 감정들을 놓아 버린다는 의미이다. 과거에 일어난 일에 대해 인간들은 후회, 죄책감, 수치심, 원한, 복수심 등을 느낄 수도 있고 또 강한 자부심을 느낄 수도 있다. 실패나 성공, 그 어느 것에 대해서나 부정적 감정을 가지고 있다면 놓아버려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세상과 마찰을 일으키지 않는 물처럼 비정형화된 유연한 ‘자아‘를 가질 수 있다. 이것이 절벽에 가까스로 매달려 있는 손을 놓아 버리는 첫 번째 전략이다.
다음은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한 두려움, 욕망 등을 내맡기는 것이다.
미래에 닥쳐올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이나 또는 지나친 욕망에 따른 기대 등은 자연의 섭리에 내맡겨야 한다. 나의 의식수준을 지속적으로 진화시키고 자연의 섭리에 따라 살아 간다면 자연의 섭리에 정해진 대로 나의 미래는 펼쳐질 것임을 확신하고 그것에 대해서는 욕망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는 것이다. 절벽에서 손을 놓는 순간, 이미 나는 딱딱한 존재가 아니라 물처럼 유연한 존재가 되었다. 그러니 천길 낭떠러지에 수직으로 내리 꽂혀도 부숴지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절벽에서 손을 놓고 난 다 음 거대한 자연의 섭리에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는 두 번째 전략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재에 존재한다.
즉, ‘지금/여기에 존재한다‘는 것은 지금/여기에서 내가 직간 접적으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일들을 ‘차근차근, 끊임 없이 행한다'의 의미이다. 내일 세상이 멸망하여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던 스피노자처럼 세상 어떻게 변하든 ‘지금/여기‘에 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 하고 싶은 것이 아니고 – 몰입하는 것이다. 정성스럽게 영향력의 원 안에 있는 일들을 몰입을 한다면 결국 flow의 상태에 이르게 되고, 그것은 인간을 행복으로 이끌 게 될 것이다.
‘과거는 놓아버리고, 미래는 내 맡기고, 오직 현재에 존재한다’는 생각할수록 대단한 전략이다. 먼저 스스로 유연한 존재가 되고, 자연의 섭리에 올라타서 오직 영원한 ‘지금/여기‘의 삶에 몰입한다 면 우리는 직업이 무엇이든, 어떤 상황에 놓여 있건 관계 없이 훨씬 행복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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