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내맡길 것인가? - 게임의 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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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3월 18일

그렇다면 이렇게 현재의 삶을 괴롭히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욕망은 어떻게 내맡기는 것일까? ‘내맡김’을 위해서는 우선, '두려움과 욕망'을 포기하게 되면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 는 믿음부터 바꿔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뭔가를 두려워하지 않으면 두려워하는 그 일이 발생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또 마찬가지로 뭔가에 대한 욕망을 가지지 않으면 원하는 그것을 소유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가령, 불확실한 상황에서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고 이를 걱정하지 않으면, 그 최악의 경우가 발생할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나는 확실히 그런 종류의 인간이었다. 뭐든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고 이것이 일어나지 않게 해달 라고 간절하게 기도라도 해야 그 일이 발생할 확률이 조금이라도 줄어 들 것이라 믿는 그런 사람 말이다. 최악의 경우에 대해 불안해 하고 걱정하게 되면 뭐라도 준비할 것이고 그러면 조금이라도 대비를 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또한 원하는 미래에 대해서는 기대와 욕망을 가져야 그리로 나가고자 하는 심리적 동기를 가질 수 있다고 믿는다.

 Old chess clock


그래서 내가 직면하는 모든 미래의 문제는 항상 ‘원하지 않는 결과 undesired result’와 '원하는 결과desired result'의 차이로 나타난다. 물가는 오르는데 남편의 연봉이 오르지 않게 되면 삶이 팍 팍해진다. ‘원하지 않는 결과’이다. 또 그럴듯한 대학에서 스펙도 키울 만큼 키웠는데 직장에 취직 이 안 된다면 이것도 ‘원하지 않는 결과’ 일 것이다. 반면, 남편의 연봉이 물가상승률보다 2-3배 오르는 것과 어엿한 대기업에 정규직 사원으로 취업되는 것은 '원하는 결과'이다. 이렇듯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모든 문제의 본질은 바로 '원하지 않는 결과'와 ‘원하는 결과‘의 차이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원하지 않는 결과'와 '원하는 결과' 사이에서 늘 조금이라도 더 '원하는 결과' 쪽으로 다가가기 위해 노력한다. 이 때, 즉 ‘원하는 결과’ 쪽으로 다가가는 매 순간 사람들은 ‘원하지 않는 결과’에 대한 두려움과 ‘원하는 결과‘ 에 대한 욕망’을 통해서 동기를 부여 받는다.

이렇게 삶의 문제를 두려움과 욕망이라는 채찍과 당근을 활용하여 대처할 수 있고, 또 그래야 삶이 풍요로워진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신이나 자연의 섭리에 ‘내맡긴다’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이성적으로는 물론이고 감정적으로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러나 환상을 걷어내고 바라 보는 실상은 매우 다른 그림이다. 현실에서는 두려움과 욕망을 활용하여 삶의 문제에 대처 한다고 해서 내가 원하는 결과를 만들기가 어렵다. 두려움과 욕망이 효과를 발휘할 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가 더욱 많다. 이에 대해 좀 더 상세한 답을 듣기 위해 두 명의 역사적 인물들을 만나 보도록 하자.

조미니와 클라우제비츠

예로부터 난세가 닥치면 영웅이 난다고 하였다. 동양도 그렇지만 서양도 마찬가지이다. 프랑스 대 혁명 이후 혼란했던 근대 유럽에는 나폴레옹이라는 걸출한 영웅이 출현하였다. 나폴레옹이 유럽 땅을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면서 연전연승을 하자 당시에는 나폴레옹의 승리비결을 연구하거나 나폴레옹을 이길 수 있는 전략을 연구하는 많은 전략가들이 생겨났다. 그 중에서도 두 명의 전략가가 단연 돋보인다. 그들은 앙리 앙투안 조미니와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이다.

 

Business people arm wrestling at the office
먼저 조미니를 보자. 그는 천재적 전략가란 칭송을 듣던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제를 존경하고 그의 전략 사상을 공부한 스위스의 장교였다. 8년간 나폴레옹의 군대에 몸담아 나폴레옹의 전쟁 수행 방식을 직접 보고 배웠다. 조미니의 이론은 복잡하지 않아서 지금까지도 많은 조직에서 쉽게 배우고 활용하고 있다. 먼저 자신들의 기지를 구축한다. 그 다음 점령해야할 ‘목표지점’을 결 정한다. 그런 후에 기지에서 목표 지점까지 여러 개의 선을 긋고 그 중에서 적절한 선을 따라 군 대를 기동시키는 것이다. 그 결과 세가지 기본 단계가 정해진다.

1. 우선 우리의 현재 위치를 이해한다.
2. 그리고 나서 이동하고 싶은 목표지점을 결정한다.
3. 그 다음 현재 위치에서 미래의 목표지점까지 각종 장애물을 헤치고 이동하기 위한 전략을 세운다.

이 세가지 단계는 오늘날 기업 및 다양한 조직들에서 사용하고 있는 전략적 기획 방법과 동일하다. 뿐만 아니라 많은 자기개발 서적에서 강조하는 개인들의 발전계획 수립과도 유사하다. 미래에 되고 싶은 목표를 설정하고 현재와의 차이를 도출하여 순차적으로 그 차이를 메워 나간다. 이는 앞에서 설명한 ‘원하지 않는 결과’와 ‘원하는 결과’의 개념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러므로 명시적으 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조미니 전략이론은 인간의 ‘두려움과 욕망‘이라는 감정을 동기부여의 불쏘시개로 썼을 것이다.

그러나 클라우제비츠 전략이론은 ‘현실에서 전략은 의도한 대로 실행되기 어렵다’는 솔직한 고백 에서 시작된다. 전략에서 중요한 목표, 즉 ‘원하는 결과’를 설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또 목표 달 성을 위해 일련의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러한 모든 전략이 처음 의도대로 실행되는 일은 거의 없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클라우제비츠가 제시한 가장 통찰력 있는 개념은 바로 ‘마찰’이다. 셀 수 없이 많은 작은 사건들, 실질적 예측이 불가능한 사건들이 축적되어 성과를 저하시킨다. 따라서 언제나 의도한 목표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가 나오 게 된다.

세상이 아무런 마찰과 변화가 없는 진공관처럼 되어 있다면 사람들의 의도와 결과는 동일할 것이다. 우리는 계획한대로 실행하면서 의도한 대로 살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은 진공관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네 인간의 삶에도 의도한 것과 실행되는 것 사이에 차이가 생긴다. 마찰과 변화의 본질은 결국 '인간 대 환경 그리고 만인 대 만인의 상호작용' 이다. 이 수많은 상호작용이 마찰을 일 으키고 변화를 불러온다. ‘세상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마찰 때문이다.

그런데 마찰로 인해 세상에는 질서라는 것이 생긴다. 질서는 다른 말로 '게임의 룰' 이다. 게임의 룰은 권력자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인간 세상의 대부분 중요한 게임의 룰은 세력과 세력간의 마찰에 의해 생긴다. 우리나라의 정치를 예로 들어 보자. 오랫동안 보수와 진보 진영으로 나뉘어 양당체제로 운영되던 정치가 2016년 20대 총선에서 3당 중심의 여소야대 체재로 바뀌는 극적인 결과를 나았다. 그 때 정치인들은 대부분 국민의 뜻이 3당 구조를 만들었다고 했다. 그러면 국민 중 누가 3당 구조를 만들었다는 것인가?

국민들이 투표 전에 모여서 ‘투표를 통 해 3당 중심의 여소야대를 만들자’고 협의를 했을까? 그런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하더라도 그들 만의 힘으로 결과를 이렇게 만들지는 못했을 것이다. 개인은 물론이고 사람들이 웬만큼이 모여도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면 누가, 아니 무엇이 3당 중심의 여소야 대 구조를 만들었을까? 그것은 바로 만인의 상호작용에 의해 저절로 생긴 게임의 룰이다. 다시 말해 마찰로 생긴 '창발적emergent 질서'라는 것이다.

세상 돌아가는 법칙이 이런지라 클라우제비츠는 계획된 목표를 고집스럽게 추구하기 보다는 상황 의 변화에 따라 발생하는 여러 기회들을 잘 포착하는 것이 전쟁의 승리를 위한 보다 현실적인 전략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컬럼비아 경영대학 교수인 윌리엄 더건 교수는 두 사람의 이론을 ‘목표 대 기회’로 요약하였다. “조미니는 먼 곳에 있는 목표를 달성하면 승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클라우제비츠는 눈 앞의 기회를 잘 포착해야 승리할 수 있다고 한다. 조미니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나 자신을 믿고 뚜렷한 목표를 세운 뒤 열심히 노력한다면,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 클라우제비츠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기회를 위 해 준비하고 그 기회를 보고 행동한다면, 나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다’”

중국대륙을 놓고 승부를 벌인 장제스와 마오쩌뚱의 싸움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일본 육군 사관학교에서 전통적인 군사이론을 배우고 훈련을 받은 장제스는 목표지점을 가지고 자신이 의도 한 계획대로 군대를 움직였다. 반면 이론보다는 전투를 통해 자신만의 게릴라 전술을 익힌 마오쩌뚱은 장제스의 강력한 군대를 피해 도망가기 바빠서 목표지점을 가질 겨를도 없었다. 다만 전투마다 발생한 기회를 활용하기 위해 군대를 움직였다. 장제스는 의도적 목표 중심의 정형화된 전략이었고, 마오쩌뚱은 창발적 기회 중심의 비정형화된 전략이었다. 결과는 알다시피 비정형이 정형을 이겼다.

우리는 지금까지 조미니의 방식을 배워왔고 그렇게 실천했다. 그러나 현실은 대부분 클라우제비츠의 방식으로 일어난다. 환경의 극심한 변화로 미래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 럴 것이다. 그러므로 미래에 대한 야심찬 목표를 세우고 ‘두려움과 욕망’으로부터 동기를 얻어 노력한다고 해서 ‘원하는 결과’를 성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현실적 성과를 이루 기 위해서는 우리의 눈앞에 발생하는 우연하고 비정형적인 기회를 포착해야 한다. 이것은 전쟁의 역사에서만 발견되는 패턴이 아니다. 계속해서 윌리엄 더건 교수의 말을 들어 보자.

“자연의 진화도 비슷한 식으로 일어난다. 생명의 진화에 어떤 방향이 있는 것이 아니다. 적응할 수 있는 기회를 따라 진화는 창발적으로 일어난다. 인간사의 진보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과학자들이 그랬듯이 누군가가 기회를 발견하고 그것을 붙잡아 현실로 만들 때 위대한 성과가 따라왔던 것이다.”


클라우제비츠가 간파한 마찰이라는 개념을 이해하면 논리적이고 의도적인 조미니 스타일의 전략이 왜 실전에서 효과가 적은지 알 수 있다. 두려움과 욕망을 붙들고 목표를 향해 전진한다고 해 서 반드시 그 목표가 달성되는 것은 아니다. 이 실상을 깨닫는 것이 ‘내맡김‘을 실천하기 위한 첫 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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