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삶을 위한 실천적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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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9월 26일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데이비드 브룩스의 ‘인간의 품격’ 이라는 책에는 두 명의 아담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각각 ‘아담I과 아담II’라 불리는 존재의 정체는 바로 다름 아닌 우리의 본성이다. 그는 ‘조셉 솔로베이치크’라는 유명한 랍비가 쓴 ‘고독한 신앙인’이라는 책에서 이 두 아담을 소환하여 소개하였다.

“아담I은 커리어를 추구하고, 야망에 충실한 우리의 본성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아담I은 무언가를 건설하고 창조하고 생산하고 발견하길 원한다. 그는 드높은 위상과 승리를 원한다. 반면, 아담II는 특정한 도덕적 자질을 구현하고 싶어한다. 그는 선한 행동을 하는데 그치지 않고 선한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 아담II는 친밀한 사랑을 원하고 다른 이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길 원하고, 초월적 진리에 순응하며 살길 원하고, 창조와 자신의 가능성을 귀하게 여기는, 내적으로 단단하게 결합된 영혼을 갖기를 열망한다.”

그는 계속해서, 인간들이 이 두가지 페르소나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있으며 따라서 우리는 이 두 가지 서로 다른 본성 사이에 생기는 갈등 속에서 사는 기술을 익혀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아담I은 간단명료한 실용주의 논리를 따른다. 경제학의 논리다. 들어가는 게 있으면 나오는 게 있다. 노력을 하면 보상이 따르고, 연습을 하면 완벽 해진다.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고, 효용을 극대화하라. 세상을 놀라게 하라. 아담II는 이와 정반대 논리를 따른다. 경제학적 논리가 아니라 도덕적 논리인 것이다. 받으려면 줘야 한다. 자기 밖의 무언가에 스스로를 내맡겨야 내적인 힘을 얻을 수 있다.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의 욕망부터 정복해야 한다. 성공은 가장 큰 실패, 즉 자만으로 이어진다. 실패는 가장 큰 성공, 즉 겸손과 배움으로 이어진다. 자아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잊어야 한다.”

인간의 내면에서 아담I과 아담II는 서로 대립하면서도 동시에 공존해야 하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아담I이 아담II 보다 더 큰 권력을 가지고 있다. 모두들 자신의 아담I를 키우기 위해서 많은 투자를 하지만 덕분에 아담II는 있는지 조차 모르고 산다. 그래서 나는 ‘흐르는 삶’, 즉 과거를 놓아 버리고, 미래를 내맡기며 오직 현재에 존재하는 삶을 통해 그렇게 잊혀져 가는 아담II를 부활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아담I을 아예 없애자는 취지는 아니다. 아담I 역시 적당한 수준에서 통제할 수만 있다면, 여전히 인간에게 필요한 본성이다. 어쩌면 나뿐만 아니라 타인도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진정한 ‘흐르는 삶’은 아담I과 아담II가 사이 좋게 어우러질 때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를 그림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흐르는삶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아담II를 육성하는 것이 ‘필요조건’이기는 하나 ‘충분조건’ 은 아니다. 거기에 덧붙여 적절한 수준의 아담I도 가지고 있으면 더욱 좋다. ‘선한 존재’이면서도, 세상의 일을 처리하는 솜씨도 좋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세상의 일을 처리하는 솜씨’란 아담I의 속성 중 하나이다. 우리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세상 일을 능숙하게 처리할 수 있으면 더욱 좋다.

아담I과 II가 모두 발달하지 않은 경우에는 서로 동일한 행동을 더 잘하려고 아등바등하면서 진흙탕 싸움 속에서 살아간다. 이렇게 되면 상대나 나 자신이나 결국은 서로 ‘패-패’하며 겨우 생존을 유지하는 상황에 머물 수 밖에 없다. 여기서 아담I을 발달시키면 ‘승-패’ 패러다임 하에서 혼자 승리하면서 성공을 쟁취할 수는 있으나 늘 두려움과 분노, 자부심에 사로잡혀 살아가게 된다. 그러면 아담I은 낮은 수준이지만 아담II가 높은 경우는 어떨까. 삶에 대한 확신은 있기에 주어진 삶의 조건에 맞추어 살아가며 주관적인 행복을 누릴 수 있으나, 타인이나 공동체를 위해 삶의 조건과 환경을 개선시키지는 못한다. 그러나 아담II와 아담I이 모두 발달한 사람은 확신과 자신감을 갖추고 자연에 법칙에 맞추어 자신을 포함한 공동체의 삶을 개선시키며 살아갈 수 있다.


‘세상 일을 처리하는 솜씨’에는 수많은 도구들이 있다. 그러나 그런 도구들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또 기억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도구들을 때(Time)와 장소(Place), 그리고 상황(Occasion)에 따라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지혜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얘기한 ‘프로네시스(phronesis)’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당시 석공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문제에 직면하여 스스로 창의적인 해결책을 찾아가는 사례를 통해 ‘프로네시스’를 설명하고 있다. 건축 작업에 투입된 석공들은 둥근 기둥의 둘레를 측정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그 당시에는 긴 막대 자만 있었기 때문에 둥근 기둥을 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럼 그 석공들은 어떻게 이 새로운 문제를 해결했을까? 그들은 이 문제에 대해 획기적인 해결책을 내놓았다. 그들은 휘어지는 자, 즉 오늘날 줄자의 시초인 유연하고 휘어지는 자를 만든 것이다.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큰 깨달음을 얻는다. 석공들은 둥근 기둥의 둘레를 측정하기 위해서 때로는 단단한 막대 자, 즉 영어로는 ‘ruler’를 유연하게 구부려야 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것을 아리스토텔레스는 때로 사람들 사이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도덕적으로 정해진 규칙(rule)을 유연하게 사용 할 필요가 있다는 보다 보편적인 진리로 발전시켰다. 이미 정해진 규칙일 지라도 TPO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는 지혜, 이것이 바로 ‘프로네시스’인 것이다. 그러나 ‘프로네시스’가 유연한 창의성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프로네시스’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바로 그 궁극적인 방향이 인류 보편적인 선(善)을 향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 마코스 윤리학’에서 프로네시스를 ‘선(善)을 목표로 하여 올바른 일을 하게 만드는 도덕적 의지이고 어떤 것이 옳은지 판단할 수 있는 도덕적 기량이자 실천적 지혜’로 정의하였다.

만일 그대가 아담I을 대부분 자기자신을 위한 이기적 목적으로 이용한다면, 그대는 다른 사람을 무자비하게 조종하는 마키아벨리적 전략만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아담I을 보다 궁극적이고 본질적인 목적을 추구하는 데 활용하기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아담II가 반드시 함께해야 한다. 아담II가 방향을 제시하고 그 방향으로 항해하는 데 필요한 도구들은 아담 I이 제공하는 것이다. 이렇게 아담I과 아담II가 적절히 결합되면 그것이 바로 프로네시스, 즉 일상에서 활용할 수 있는 ‘실천적 지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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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번 장에서는 ‘흐르는 삶’을 위해 우리가 일상에서 활용할 수 있는 몇 가지 ‘실천적 지혜’들을 제시하려 한다. 이러한 실천적 지혜들은 매일매일의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우리가 스스로를 혁신하고 또 가족, 이웃, 동료와 더불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유용한 도구들이다.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수많은 지혜가 있으나 이번에도 역시 앞 장의 자연의 섭리와 마찬가지로 나의 경험에 의존하여 네 가지 핵심적인 것들을 추렸다. ‘내가 직접 써보니 참 좋더라’는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으로 뽑은 것이기는 하나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유용할 것들을 중심으로 정리하였으니, 자신들의 상황에 맞게 응용해서 활용할 수 있 을 것이다.

첫 번째는 ‘라이프모델-자기, 가정, 관계, 직업’이다.

살다 보니 자신의 삶을 관리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곤란할 때가 있었다. 직업이 컨설턴트라, 직업정신을 발휘하여 삶도 경영모델처럼 손질과 수선이 가능하도록 모델화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내 나름대로 ‘라이프모델’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이것을 활용하여 삶에서 어떤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내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인지, 나의 삶 어느 부분에서 이슈가 생겼고 그것들이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등을 알아낼 수 있다. 그리고 삶의 방식을 바꾸고 싶을 때 라이프모델을 활용하면 어디를 어떻게 변화시켜야 하는지 등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적절한 라이프모델을 가지고 있으면 행복을 위해 돈, 건강 외에도 다양한 수단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두 번째 제시하고 싶은 지혜는 ‘동기부여체계’이다.

라이프모델을 구동시키기 위해서는 동기(動機)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 인간이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적절한 동기가 부여되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동기는 바로 보상과 처벌, 즉 당근과 채찍을 통해 주로 외부에서 부여된다. 그런데 언제까지나 외부의 ‘당근과 채찍’에만 의존해서는 자신이 원하는 라이프모델을 살기 어렵다. 지금 어떤 동기부여체계에 영향을 받고 있는지 스스로 파악하고 외부가 아닌 내면의 동기부여체계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알아 볼 것이다. 자신의 본성과 기질에 맞는 ‘당근과 채찍’이 있어야 자신만의 라이프모델을 발전시킬 수 있다.

세 번째는 삶에서 부딪치는 문제를 다루는 지혜인 KISS이다.

문제에 답을 찾는 방법에는 ‘해결’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해소’라는 방법도 필요하다.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해소할 것인가는 문제의 특성에 달렸다. 그런 문제의 특성도 모른 채 무조건 문제를 붙잡고 씨름한다고 해서 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보다는 한 발짝 물러서서 문제에 KISS(Keep It Simple and Stupid)할 때, 즉 문제를 단순하고 어리석게 바라볼 때 오히려 더욱 많은 대안을 얻을 수 있다. 자신만의 당근과 채찍으로 라이프모델을 운영하더라도 삶의 문제들은 언제나 발생하기 마련이다. KISS는 이에 대한 답을 찾는 실천적 지혜이다.

마지막 네 번째는 문제에 대한 답을 실행할 때 활용할 수 있는 지혜이다.

삶은 두 개의 원으로 표현할 수 있다. 첫 번째 원에는 나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포함된다. 이것이 ‘관심의 원’이다. 이 ‘관심의 원’안에 내가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들만을 포함한 두 번째 원을 그릴 수 있다. 이것이 ‘영향의 원’이다. 모든 삶의 문제들은 다 관심의 원안에서 생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은 모두 영향의 원 안에 있다. 그러나 영향의 원 안에 문제에 대한 완벽한 답이 있지는 않다. 그 당시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답이 그 안에 있다는 것이다. 해결책이건 해소책이건 이를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방안, 그것도 지금/여기서 가능한 수준의 방안은 바로 영향의 원안에 있다. 이 두 개의 원은 우리를 문제투성이의 삶 한복판에서도 ‘지금/여기’라는 시간의 물마루에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지혜이다.

이제 삶이 장애를 만났을 때 유연하게 휘돌아 빠져 나가게 해줄 ‘실천적 지혜’들을 하나하나 만나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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