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과도한 생각(overthinking)’에 붙잡혀 사는 경우가 많다. 과도한 생각이란 말 그대로, 쓸 데 없이, 수동적으로, 끝없이 스스로의 성격과 느낌과 문제 따위의 의미나 원인, 결과에 대해 지나치게 생각을 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계속 가면 얼마나 불행해질까?’,
‘상무님 말이 무슨 의미였을까? 혹시 나를 승진에서 누락시키겠다는 것 아닐까'
등등.
있지도 않은 최악의 일들을 상상의 나래를 펴며 계속 생각하는 것이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진화적으로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는 능력을 발달시켜 왔다. 선사시대처럼 거친 삶의 환경 속에서는 항상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상상할 수 있는 편이 그렇지 못한 경우보다 생존확률이 높았을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을 할 수 있는 쪽이 그러지 못한 쪽보다 대응력이 좋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현대는 그 때에 비하면 생존을 위한 조건들이 많이 나아진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고 무언가를 끊임 없이 걱정하는 사람은 위험한 일에는 잘 대비하겠지만 삶이 얼마나 즐거운지는 결코 알지 못한다.
아니 지나친 과도한 생각은 이성적 사고를 저해하여 오히려 위험 닥쳤을 때 적절한 대응을 방해할 수도 있다. 모두들 살면서 그런 과도한 생각에 붙잡힌 적이 있을 것이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작은 징후들을 보고 마음은 끊임 없이 걱정을 하기 시작한다. 종국에는 세상에 종말이 곧 닥칠 것처럼 마음 속에서는 최악의 경우만 떠오르곤 하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다.
심리학자들도 과도한 생각은 슬픔을 지속시키거나 악화시키고, 지나치게 부정적인 생각을 강화하며, 문제 해결 능력을 손상시킨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매사에 신중함을 기하려는 성향을 가진 나는 정말 ‘과도한 생각’에 자주 사로잡히는 편이다.
내가 스스로 가지고 있는 명분은 최악의 경우에도 항상 그에 대한 대응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소한 징후만 보여도 과도한 생각을 통해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고 그에 대한 대응 방안을 개발하기 위해 고민한다. 그게 전략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삶에서 맞이하는 최악의 경우 중에는 그냥 견디는 것 말고는 별다른 전략적 대응방안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그런 상황을 만나면 그저 고민만 깊어지고 우울해 지고 속절없이 잠 못 드는 밤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 ‘전략적’이라면 전략적인 사고와 과도한 생각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전략적 사고는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결과를 만들어 낸다. 과도한 생각은 행복을 저해하는 잘못된 습관일 뿐이다. 과도한 생각을 극복하는 방법은 비교적 간단하다.
대상되는 문제를 관심의 원과 영향의 원으로 구분한다. 관심의 원에 대해서는 기도로 대응한다. 영향의 원에 대해서는 묵묵한 실천으로 대응한다. 최악의 경우는 미리 상정하지 말고, ‘그 때가서 생각하자’로 대응 한다.
정작 나를 괴롭히는 많은 것들은 다 관심의 원 안에 있다.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열심히 기도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내게 주어진 영향의 원에 있는 것들을 충실히 준비하고 실행하면 된다. 그리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최악의 경우를 맞이 하더라도 삶이 그것을 통해 내게 깨닫게 하려는 의미를 배워가면 된다. 삶은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마케터를 위한 이건호의 인문학 칼럼 (28)
저자는 퍼포마스 대표파트너로서 4차산업혁명 및 중국시장전략 전문가이다.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 전략자문, 저술, 강연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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