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터를 위한 이건호의 인문학 칼럼 (21)
얼마 전 제법 큰 사업을 하고 있는 친구와 단 둘이 저녁을 함께 했다. 학창시절에는 서로 개인적인 고민도 얘기했던 사이인데, 어느새 우리들은 단 둘이 만나면 다소 어색해지는 사이가 되었다. 사업을 키우느라 항상 바쁘게 지내는 친구라 그날도 사업 돌아가는 얘기만 했다.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그리고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그 친구의 삶은 조그마한 자투리 시간도 허락하지 않는 ‘일’의 연속이었다. 아랫 사람들이 제대로 일을 못해서 자신이 다 챙겨야 한다고 목맨 소리를 하는 대목에서 내가 뜬금 없이 물었다. ‘야, 너 행복하냐?’ 잠시 허공을 응시하던 친구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그럼 행복하지. 사업이 얼마나 재미 있는데…’
상어가 득실대는 바다 위에서 자신의 배를 이끌고 항해하는 것, 날마다 사건사고를 처리하고, 사람들과 회의하면서 사는 삶이 그 친구에게는 행복한 것이다. 학창시절부터 뭔가 새로운 것에는 과감하게 도전하던 그 친구를 생각하면 그럴 만도 하다. 사업이 자신이 가진 본성과 기질에 맞는 일이라면 당연히 그럴 것이다. 매일 바쁘고, 힘들다고 죽는 소리를 해도 일에 중독된 사람들은 스스로 행복한 것이다. 어디 그 뿐이랴 심지어 직업 군인들 중에는 생사가 넘나드는 전쟁터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행복한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칙센트 미하이칙센트는 사람이 자신의 역량에 맞는 일에 몰입하고 있는 순간을 ‘몰입(flow)상태’라고 했고, 그런 몰입상태에 있을 때 진정으로 행복을 느낀다고 했다. 날마다 조직 내의 상사나 동료들과 부닥치면서 타협하고 판단하고 명령 내리는 삶에서 몰입상태가 만들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총탄이 귓불을 스치는 전장 터에서, 한발 잘 못 디디면 천길 낭떠러지로 수직 낙하하는 암벽 등반 중에도 사람들은 몰입에 빠져들면서 설명할 수 없는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지극히 개인만의 행복이 아닐까. 즉 자기 자신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 말이다. 그런 개인적인 행복을 느끼는 당사자는 좋겠지만 주위 사람들은 어떨까? 밤낮없이 사업에 몰입하고 있는 내 친구의 가족들은 어떨까? 저녁에도 늦게 퇴근하지만 퇴근해서도 스마트 기기에 매달려 업무를 보고 주말에는 골프를 하러 나가는 아빠의 뒷모습을 보는 아이들은 어떨까? 서로 공유할 수 있는 행복이 없는 경우, 엄마는 엄마대로 애들은 또 애들대로 개인적인 행복에만 집착을 하다 보면 세상은 그야말로 원자단위로 쪼개질 것이다. 그렇다면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행복은 없을까? 아니면 자신이 행복한 것 자체가 가족들에게, 또는 주변 이해관계자들에게 또 다른 행복을 전염할 수 있는, 그런 행복은 없을까?
한창 성장하는 사업에 푹 빠진 내 친구의 행복을 폄훼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그의 행복이 지극히 개인적인 것임은 부인할 수 없다. 그는 진정 행복하겠지만 그 행복이 가족이나 직원 같은 주변의 이해관계자들을 행복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물론 그가 열심히 몰입해서 일을 하는 덕에 회사는 나날이 성장하고 그래서 직원들은 든든한 일자리에 두둑한 보수를 챙길 수 있고 가족들 역시 풍족한 삶을 살고 있으니 행복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친구의 행복이 전염되는 것은 아니다. 사업의 성과가 창출하는 가치일 뿐이다. 오히려 의욕이 앞서는 그 친구 덕에 가족은 외롭고, 직원들은 죽을 맛이다.
처음에는 그렇게 개인적인 행복에서 시작할 수도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좀 더 본질적인 행복은 내게 소중한 다른 사람들도 함께 행복해 질 수 있는 그런 전염성 강한 행복, 즉 등급이 높은 행복이어야 한다.
이런 행복이 ‘궁극의 행복’인 것이다.
여러분은 지금 얼마나 전염성이 강한 행복을 추구하고 있는가?
No Comments Yet
Let us know what you think